지금 내가 순간순간 하나님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몇 년 동안의 불교와 유교를 비롯한 동양 종교에 대한 앎을 통해서이다. 아직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라는 인식의 전환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는 못했다. 분명하게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 동안의 노력으로 깨달음 가까이 온 듯한 느낌은 든다. 하지만 그다지 집착하지는 않는다. 집착하면 할수록 더 멀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확실히 몸이 많이 예민해지고 인식의 전환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상황이 느껴지다가도 사라지곤 한다.
기독교인이다보니 처음 불교를 접할 때에는 별로 깨닫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불교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이 나를 무척 매료시켰다.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가 기독교에서 가리키는 하나님과 의미가 거의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동안 불교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불교에 대해서 나는 그다지 비판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교에 관심을 갖거나 공부를 하지는 않았었다. 내 주변 기독교인들은 불교를 악마의 종교로 생각하고 내가 관심갖는 것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하기야 나도 불교를 알아가면서 혹시나 내가 기독교에서 변질되면 어떻하나 많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불교를 알고나니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불교는 악마의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가질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이웃 종교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실제로 종교의 벽을 허물고 영성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주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사람들 위주로 그들이 쓴 책이나 강연을 들었다. 그들이 스님이든 불자이든 거사이든 무교이든 기독교인이든 종교를 따지지 않았다. 깨달음을 얻는 자들은 굳이 종교를 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깨달은 사람들이 특정 종교만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불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성경과 유교 경전도 나름대로 활용하면서 진리를 설파했다. 즉 유럽이나 미국에서 종교는 쇄퇴하지만 영성이 활발히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그 풍토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깨달은 사람의 수련원에서 어떤 이가 상담을 하는데 기독교인이어서 놀랬다. 그런데 그 사람 뿐만 아니라 종종 기독교인들이 눈에 띄었고, 다른 곳에서도 기독교인들이 깨달은 이를 많이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기독교인들이 불교 신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을 알려는 노력으로 그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무척 신기했는데 몇 년 지난 지금은 그것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깨달음이 기독교의 거듭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깨달음이 거듭남과 다르지 않다는 걸을 알게 된 것은 그 동안 불교, 유교, 힌두교, 기독교, 토속신앙에서 영적 변화를 가진 사람들을 연구해서이기도 하다. 깜짝 놀란 것은, 깨달음을 가진 사람들의 변화와 그 상태가 기독교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사례와 거의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서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아가 죽는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거듭난 사람이란 이전의 나가 죽고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이전의 나란 바로 태어나서부터 성장하고 자라면서 형성된,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아왔던 바로 늘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그 거짓된 인격체를 말한다. 그것이 죽게 되는 날 성령의 나, 참된 나가 살아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죽고 하나님이 살아나는 것이다.
불교에서 부처가 된다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실제로는 나라고 할 것이 없지만(무아), 그 동안 주체적인 자기가 있다고 생각했던 그 자아가 멸하고, 부처가 전부이며 참된 나라는 발견이 깨달음이다. 즉 내가 나라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본래부터 부처였다는 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와 같은 고백이다. 즉 거짓된 나는 죽고 영으로, 즉 하나님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거듭남이다.
이때 두 경우 모두 엄청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다. 거듭난 사람은 바로 이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될 것이고, 깨달은 자는 이 세계 안에서 모순없는 세상을 보게 된다. 이 세상은 하나로써 하나님 안에서 선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이 세계는 부처의 세계로써 모순없이 온전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게 된다. 두 경우 모두 각자의 종교적 문화를 근간으로 설명되어진다. 부처와 하나님은 기호적으로 모양과 이름이 다르지 세계의 근원으로서는 같은 존재를 가리킨다.
기독교인 중에서 부처를 석가모니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석가모니는 깨달은 자로서 석가모니 부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이미 부처인데 자신이 처음부터 부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초의 사람이 바로 석가모니였던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적으로 설명하자면, 예수님과 모델이 비슷하다. 육신으로 세상에 오셔서 성령으로 그리스도, 즉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석가모니와 예수님은 같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거듭나면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 즉 하나님이 된다. 석가모니와 예수님이 그 길을 보여주신 것이다.
물론 두 종교간에 서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차피 경전의 검은 물감을 갖고 노는 사람들(근본주의자들)이니 무슨 소리를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종교에 세뇌된 사람들의 사고는 완전히 바위 덩어리와 같다. 너무 단단하게 굳어서 그들의 종교적 관념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기독교적 사고에서 오늘날 이런 유연한 사고를 하는 몇 년 동안의 변화를 느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많이 두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자유롭다. 성경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신 말씀이 이제야 와닿았기 때문이다. 진리는 특정 종교나 교파에 숨어있지 않다. 진리는 온 천하에 두루 늘려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종교를 떠나서 깨달은 사람이요 거듭난 사람이다.
동학의 최제우도 깨달은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을 체험했으며 모든 사람 속에 그 영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동학 사상을 내세운 것이다. 그 모든 사람 속의 영이란 다름 아닌 기독교의 성령과 같다. 신분사상이 투철했던 조선시대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모두가 자기 시대, 자신의 문화 속에서 체험을 이해하다보니 다양한 표현으로 드러나는 것 뿐이다.
기독교인들 중에서 불교의 부처에 대한 개념이 상당히 오염되어 있거나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절집의 부처상을 부처로 생각해서 우상숭배하는 집단이라 매도한다. 불자들이 불상 앞에서 절하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불교에서는 그 불상을 부처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로 치자면 십자가 혹은 마리아상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부처에 대한 상징성을 담고 있지 신(神)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불교의 전해지는 얘기에는 불상을 장작불로 사용했던 사례까지 있다. 불상에게 절을 하는 것 또한 상징적이다. 내 안의 부처에게 절을 하는 것인데 대신에 부처상이 눈 앞에 있는 것 뿐이다. 절을 하면서 내가 부처상을 부처로 생각한다면 불교에서도 우상숭배가 된다.
불교에서 명상을 할 때 환상으로 부처가 나타나면 부처를 죽이라고까지 한다. 그렇게 나타난 부처는 부처가 아니라 망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우상과 같은 의미이다. 부처에 어떠한 상(像)도 없기 때문에 공(空)이라고도 한다. 하나님도 어떠한 상(像)도 만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기독교인들은 부처 자체가 이미 우상이 아닌가 반문할지도 모른다. 부처는 우상이 아니다. 불교에서 부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같다. 부처와 세상이 있듯이, 하나님과 피조물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세상의 일부이고 피조물일 뿐이다. 기독교에서 가리키는 그 하나님이 동양에서는 부처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것 뿐이었다.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어 주관되고, 하나님이 없으신 곳이 없는 곳이 바로 우리 세상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전 우주적인 존재이시다. 부처도 마찬가지이다. 부처는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이 세계를 인연따라 나타나게 하고 사라지게도 한다. 세계는 바탕을 이루는 공간, 즉 부처 안에서 나타난다. 세계가 순간순간 부처를 드러낸다. 마치 하나님이 세계에 드러나듯이.
위에서 설명한 부처와 하나님, 깨달음과 거듭남의 설명은 일반적인 종교인들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네들 종교 관념에 매몰되어 근본주의, 문자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면 이단으로 치부한다. 진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네들 종교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기독교, 불교를 떠나서 그런 사람들은 상대의 현상적인 것만 찾아서 비판하고 물어 뜯는다. 진리에 관심이 없다보니 피상적인 것만 보게 되고, 그러다보니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철저히 깨달은 사람들 위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위주로 탐구하고 연구하고 실행을 해 보았다. 몇 년의 노력 끝에 나는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나는 참 자유를 얻고 있다. 그 전에는 잘 못 느꼈던 하나님의 실존을 지금은 순간순간 느끼기까지 한다. 내 숨소리, 내 발자국 하나에 조차 그 분의 손길을 느낀다. 내 심중에서 어느 것 하나 듣지 않으신 때가 없는 하나님을 느낀다. 늘 계시고 인식하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불교와 다른 종교, 그리고 깨닫고 거듭난 사람들 덕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