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대하여.
한번씩 독서왕에 관한 책들이 나온다. 일년에 책을 1000권 읽었다느니, 700권 읽었다느니, 300권 읽었다느니 하는 책들이 나온다. 책을 잘 안 읽거나, 책을 좋아하지만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이 대상이 된다. 어떻게 저렇게 읽을 수 있을까? 무슨 좋은 방법이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호기심으로 그들이 제공하는 방법을 찾아서 그들이 지은 책을 읽는다. 하지만 실제로 별 내용이 없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려면 직접 읽는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책을 본다고 하더라도 무슨 뽀족한 수가 있겠는가?
책을 많이 읽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먹고 자고 운동하는 시간 이외에 책만 읽는 방법이다. 그러면 일 년에 수 백권에서 많게는 천 권까지 읽을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책을 꼼꼼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거나 마음에 가는 단락을 찾아서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다. 이 방법은 그리 개운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핵심은 다 읽은 것이니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실 일년에 수 백권 혹은 천 권 읽었다는 것은 특별히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려면 오로지 책만 읽어야 한다. 일이 년 정도는 그렇게 살 수 있지만 한결같이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그 기간 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준비해서 열심히 노력한 어떤 이의 수고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이런 말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직접 그 만큼 책을 읽어봤기 때문이다. 일년에 천 권은 아니더라도 몇 년 동안 일년에 삼 백 권 이상은 읽어본 적이 있다. 물론 꼼꼼하게 읽는 방식으로 그렇게 읽었는데 독서하는 시간이 어마어마 하게 들었다. 즉 잠자고 밥먹고 약간의 여유 시간 빼고 책만 읽어야 가능한 것이다. 더군다나 읽기 쉬운 책이어야 한다. 중간에 생각을 요구하거나 줄을 치거나 해서도 안되고, 너무 두꺼워도 안 된다. 그런데 그런 책들이 의외로 많다. 기술서적, 처세술, 경영서적, 자기개발, 돈버는 방법 등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욕망을 들추는 책들이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사실 나는 사업 때문에 그런 책들을 몇 년 집중해서 읽어봤다. 하지만 일이 년 지날수록 헛웃음만 내뱉고선 그런 종류의 책읽기는 그만 두었다. 약간의 자기개발과 세상 돌아가는 지식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만 그기까지였다. 그런 종류의 책 가운데 정말 괜찮은 책 몇 권만 제대로 읽어도 수 백 권 읽은 내용의 전부를 습득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좋은 책이 잘 없었고, 이곳저곳 수집해서 짜집기 한 책들이 많았고, 하나의 교훈이나 주장을 너무 너절하게 쓴 책도 많았고,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책들도 많았다.
어떤 목적으로 책을 읽는지도 중요하고 그것에 맞추어 책을 요령껏 읽어나가야 하겠지만, 나는 무조건 많이 읽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의 독서 스타일은 하나의 관심 분야에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형식이다. 이미 다양한 분야에 대한 독서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꾸준하게 하나의 분야에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독서법이 정말 와닿는다. 그리고 독서의 양보다는 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많이 읽어봤자 기억하지 못하면 별 소용이 없다. 기억하게 만들려면 읽는 동안이라도 뇌에 자극을 주어야 한다. 그럴려면 생각을 하거나, 책에 줄을 긋거나, 책 여백에 메모를 하거나, 다른 책들 속에서 관련 내용들을 비교하거나, 책에 대한 생각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는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없이 빠른 속도로 읽기만 하고 독서양만 늘인다면, 많이 읽었다는 자부심은 생길지 모르지만 남는 것이 없다. 책 많이 읽기 대회가 아닌 다음에야 읽은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극을 많이 주면서 읽을수록 나중에 어떤 경험이나 또 다른 책을 읽을 때 그 지식이 부활한다. 그러면 지식이 다른 지식과 상호 연관성을 맺어서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내가 가장 이상적이다고 생각하는 독서방법은 이러하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파고들어야 할 독서를 병행하는 방법이다. 예를들어서, 일주일에 2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고 가정하면, 한 권은 매주 집중해서 읽어야 할 분야의 책으로 선별한다.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때까지 계속 꾸준하게 읽는다. 다른 한 권은 그 집중해야 할 분야를 보조할 책들을 다방면으로 바꾸어 가면서 읽어 나간다. 초기에는 이러한 방식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지식은 분야별로 내용과 형식이 달라지지만 세상의 원리는 통하는 맥이 있다. 숫자가 모든 분야에서 쓰일 수 있듯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가운데 그 모두를 관통하는 질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발견하는 묘미가 상당히 재미있고 중요하기도 하다. 그러는 가운데 통합하는 지혜가 생기고 세상을 균형있게 보는 시각도 키워진다. 즉 집중해야 할 지식이 다른 분야의 지식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보기 때문에 독선이나 편협된 지식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지식 상호간의 관계성에서 지혜를 얻기도 한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으면 이제 자기 스타일의 독서법이 나타난다. 어떤 책을 더 읽어야 할 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는지 스스로 알게 된다. 그러면 알아서 관련 서적을 찾아서 독서 세계에 빠지게 된다.
위에서 말한 내 경험을 하나 얘기하자면, 나는 10년 가까이 꾸준하게 미술 관련 서적을 읽어 왔다. 그 전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읽었는데 몇 년 읽다가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에 독서 방향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미술에 대한 식견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꾸준하게 거의 매일 미술에 관련해서 관심을 가지며 독서한 결과 지금은 나름 그림보는 법도 알게 되었다. 미술공부를 하면서 내가 함께 공부한 분야는 철학, 미학, 과학, 수학, 역사, 문화사 등이었다. 학문은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함께 독서하고 강의듣고 공부를 해 나갔다. 최근 미술에 대한 공부를 그만 두었다. 지금은 다른 곳에 마음이 있어서이다. 그리고 미술에 대한 식견이 책을 떠나서 내 나름의 식견을 기르고자 하는 생각에 그리한 것도 있다.
하여튼, 책은 안 읽는 것보다는 많이 읽는 것이 좋지만, 무턱대고 읽기 보다는 좋은 책을 찾아서 잘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내가 어떤 이유로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 목표를 정해서 읽는 것이 좋다. 무작정 읽는다는 것은 대책없이 길을 간다는 것인데 정말 무모한 짓이다. 목표를 정했으면 그 목표를 채워줄 책을 찾아서 읽어야 한다. 하지만 책 많이 읽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것만큼 도움 안 되는 것이 없다. 많이 안다는 것은 자랑거리는 될지언정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되고 시간낭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요즘 나는 한 달에 책 읽는 양이 정해지지 않았다. 어떤 때는 수 십 권 읽고, 어떤 때는 몇 권 읽을 때도 있다. 몇 권 읽을 때에는 관심이 없거나 놀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된 관심분야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있을 때가 많다. 책에서 부족한 부분을 동영상 강의나 다큐에서 보완하는 것이다.
책도 반복해서 읽는 경우가 많고, 동영상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진도가 늦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독서의 진도나 양 같은 것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 오로지 내가 원하는 정도의 이해와 지식을 가졌느냐가 중요한데, 지식의 양보다는 그 분야에 대한 이해와 식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식이란 정말 기본적인 것만 알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 지식을 관통하는 맥, 원리, 이해 같은 것은 정말 중요하다. 이러한 것들이 생길 때까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그 분야에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인가? 내 나름대로의 생각은 이렇다. 기술서적, 자기개발서, 돈버는 방법과 같은 책들은 정말 괜찮은 책을 수소문해서 분야별 몇 권씩만 읽으면 충분하다. 그런 분야의 책들을 많이 읽어봤자 다 그 원리가 비슷비슷 하다. 몇 권의 책에서 연역적인 원리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그러면 그 만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참고로, 자기개발 서적들은 인문학이나 고전에서 그 원리를 갖고 와서 적용한 경우가 많다. 남의 식견을 따라가지 말고 자기 스스로 그 식견을 키워보는 것도 괜찮다.
고전과 인문학 서적은 삶을 윤택하게 하고 지혜를 가져다 준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읽는 것이 좋다. 고전은 대부분 두껍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반복해서 읽어야 할 책들이다. 가능하면 구입해서 두고두고 줄치고 메모하고 기록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그 책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이해되고 있는지 아는 것만도 상당한 지적 능력을 키워준다.
그 외 자기 전문분야에 대한 독서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한다면 알아서 열심히 독서하기를 바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