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슬픔, 고통, 눈물과 같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들이 없는, 마치 기쁨과 행복과 사랑만 있는 그런 세계는 아니다. 세상에서 서로 대립되는 것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분리되지 않는다. 슬픔이 없는 세계를 꿈꾼다면 기쁨도 함께 사라진다. 불행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면 행복도 함께 사라진다. 두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반드시 있어야만 자신이 함께 드러난다.
아침에 산책길을 걷다가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슬픔이 없다면 기쁨도 없다. 슬픔과 기쁨은 하나이다. 둘이 하나가 되는 순간 두 개념은 분리된 것으로써의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 우리가 기쁨 혹은 슬픔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그러한 감정적 행위나 표현에 대한 언어적 서술이다. 기쁨의 표현은 기쁨의 언어적 표현이고, 슬픔의 표현은 슬픔의 언어적 표현인 것이다. 어떤 것도 우리가 굳이 비교하고 버려야 할 감정적 상태가 아닌 것이다. 둘 다 포용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안을 때 기쁨도 슬픔도 우리가 선호하거나 멀리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게 된다.
서로 상반되는 것들은 언어적 표현에서만 존재의 의미가 있다. 언어는 실재하지 않는 기호이다. 하지만 감정적 표현은 언어와 달리 삶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이다. 삶에서 드러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삶을 언어가 지배하지 못하게 할 때 더 이상 삶은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는 슬픔이 사라진 기쁨만 있는 곳도 아니며,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는 그런 이분법적 감정적 요소가 지배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적 흐름, 배척하거나 선호할 것이 없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된 세계 그대로 흘러가는 세계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옛사람인 에고는 늘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에게 달콤하고 유혹적인 하나만 취사선택하여 갈망한다. 만약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잠재우고 자신에게 펼쳐지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받아들인다면 고요하고 잔잔한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달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서 불행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 어떤 것을 불행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어떤 것'으로써만 존재하게 된다. 그때 그 '어떤 것'은 더 이상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 못한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불행이라고 규정한다면 그 비교 대상이 되는 행복이란 것도 함께 탄생한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을 규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어느 것에도 치우치치 않고 잔잔한 가운데 중심을 찾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그때 내 앞에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