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 먼저인가, 깨달음 체험이 먼저인가? 깨달음이란 진리에 대한 앎을 터득한 것을 말한다. 진리는 매순간 우리 삶에서 나타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깨달음에 대해서 많은 책이 있고 글이 있지만 그것을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체감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내 경험에서도 그러하다. 내가 지식으로 이해한 깨달음은 내용은 알지만 그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어떤 과일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 맛을 모르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늘 마음이 답답하고 찾게 된다.
며칠 전 갑자기 진리가 그 본성을 나타냈다. 보이는 것에 어떤 힘이 느껴지더니 며칠 지나자 그게 더 선명해졌다. 늘 보던 눈 앞 풍경이 인식의 전환이 와서인지 깊은 곳에서 그것을 보고 있다는 또렷한 느낌이 왔다. 간혹 생각은 보이는 것과 별개로 나타났고, 그 생각마저 깊은 곳에서 보고 있었다. 모든 일어나는 것이 의식 안에서 관찰되고 있었다.
이런 알아차림은 전부터 계속 있었지만, 그때의 알아차림은 단지 피상적인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다. 이게 '보는 자를 보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알아차림이었다면, 지금은 그냥 알아진다. 의문을 일으키는 것이나 생각 따위는 <나>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겨서 모두 무시되고, 그냥 본질적인 알아차림이 생기고 있다. 이전의 알아차림이 누가(참나 or 자아) 아는 것인지 헷갈렸다면, 지금은 그 알아차림은 무척 자명하게 와닿는다. 그냥 알아차림만 있다. 자아(ego)나 생각의 자아가 끼어들 알아차림은 없다.
깨달음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거머니 찾아와서 좀 당황스럽기는 하다. 일상이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생각도 찾아오고, 깨어있음이 쭉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물론 한번 깨어있음이 생기면 오래 지속되긴 한다. 확실한 건 도(道)가 무엇인지, 그 상태가 어떤 것인지는 확실히 체득한 것 같다. 다만 사람들이 말하는 깨달음과 함께 동반한다는 어떤 체험이 없을 뿐이다. 그게 나중에 찾아오는 것인지, 아니면 나한테는 안 일어날 것인지 나는 모른다. 체험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고 하고, 나처럼 특별한 체험없이도 깨달음이 온다고 하니 지금 내 상태는 단지 이러하다는 것만 남긴다. 이제 시작인 것만은 분명하다. 노력없는 함으로 계속 삶이 이어져야 한다. 문이 열렸으니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사실 본성이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답답했었다. 이제는 눈 앞에 풍경이나 귀에 들리는 소리는 깨어있음 상태에서는 날 것 그대로 들린다. 내가 본다거나 듣는다는 생각이 생기기 전에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간혹 생각이 생기면 생각도 그냥 알아차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아가 보고 듣고 알아차린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본성이 그것을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의식에 드러나는 그대로 본성의 알아차림이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