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육(미술평론가)라는 분이 있다. 방금 우연히 검색하다가 그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법보신문에 연재하는 글이었다. 그는 20년 넘게 불성을 찾았지만 이르지 못하다가 금타(金陀, 1898~1948)화상이 쓴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을 읽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는 방편문
깨달음보다 더 중요한 것
그가 첫 번째 글을 쓴 다음에 어떤 독자로부터 '정수리가 열리고 번개가 관통한 것 같은 신체적인 변화'를 경험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런 경험이 없다고 했다. 부처님 시절에도 어떤 체험이나 신통력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견 즉 본성을 보는 바른 견해가 없다면 어떠한 신통력이나 체험도 손에 쥔 칼과 같이 위험할 수가 있다고 경고했다. 중요한 것은 본성을 보는 것이지 신통력이나 신비한 체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면서 신비한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수리가 열리고 번개가 관통한 것 같은 신체적인 변화'와 함께 세상도 사라지고 자기 몸도 사라지면서 오직 의식만 깨어있는 순간을 체험한다고 한다. 그 체험은 짧게 진행되다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 온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 체험이라고 한다.
그런 체험을 한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시로 그 체험을 무척 강조한다. 그런 체험이 없다면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류에서는 그런 체험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체험은 사람마다 그 내용이 다르고 체험의 강도나 길이도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강렬한 체험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짧은 순간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체험이 없이도 깨달음이 온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본성을 보는 것이지 곧 사라질 체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도 체험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체험이 있으면 그 강렬함에 도움이 많이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생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핵심이다. 깨달음도 생사의 문제를 넘어서고자 필요한 것이지 체험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닌 것이다. 석가모니도 생노병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6년 동안 고행을 했고, 고행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어떨결에 일주일만에 본성을 보고 해탈하지 않았던가.
내 경우도 어떠한 체험이나 신통력 없이 본성을 봤다. 유성천 벤치에 앉아서 여느 날처럼 알아차림 하다가 갑자기 눈이 밝아졌다. 몇 달 동안 알아차림 하면서도 단지 깨어서 보는 정도였는데, 며칠 동안 본성이 잔잔히 미약하게 한번씩 느껴지다가(그때는 그것이 본성인지 몰랐고 이전과 좀 다르다는 느낌만 들었다) 그날(11월 9일) 분명하게 본성을 자각했다. 며칠 동안의 잔잔한 드러남으로 인해서 그날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며칠 지나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자 확연히 놀랬다. 그것이 나의 깨달음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본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음을 본다. 아직 옛습성이 강하지만 본성이 강해지는 만큼 옛습성은 약해지고 있다. 마치 의식이 영역 싸움 하는 것 같다.
조정육씨는 20년 넘게 시간이 걸려서 본성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가 정말 본성을 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니 그렇다고 하자. 나는 처음 시작해서 3년 반 정도 걸렸다. 사실 2년 넘도록 길을 찾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소비했다. 기독교적 삶을 살다가 진리를 찾는 일에 뛰어들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기록 그리고 정보가 필요해서 2년 넘게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하고 여러 방법을 실행 했었다. 작년부터 겨우 정리가 되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조금씩 진행하다가 올해부터 명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올해 후반기부터 본격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나는 본성을 봤다. 그렇다고 내가 확연히 깨달았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불교에서 말하는 그 깨달음의 정도가 어디까지인지도 잘 모른다. 사람마다 깨달음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본성을 본 것은 확실하지만 힘이 약해서 앞으로의 삶은 본성을 강화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깨달음 논쟁이 아니라, 생사를 극복할 수 있느냐와 진리를 확연히 알게 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문이 열렸으니 정진하는 길 밖에 남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