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공원 습지길 안쪽 갈대숲과 돌다리)
오후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돌다리를 건너서 나무 아래 잠시 앉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서 잎들이 하늘로 치솟으며 날아갔다. 고개를 들어 날아가는 잎들을 바라보니, 마치 헤어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만 하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애절한 사연 같았다. 갈대들도 바람에 계속 머리를 흔들었다. 몸은 가늘지만 유연해서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바람이 숲과 갈대에 물결을 만들었다. 나는 그 변화를 지켜본다. 눈 앞의 세상은 잠시도 정지해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뀌고 이동한다. 그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자연의 변화는 의식 안에서 나타난다. 의식은 순간순간 변화를 표현한다. 나는 그것을 알아차린다. 나의 관심은 변하지 않는 의식의 힘에 맞추어져 있다. 변하는 것들은 어차피 실체가 없어서 연기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그 변화를 일으키고 감지하는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갈대의 흔들림은 변화지 않는 것이 있어야 그 변화를 드러낼 수 있다. 알아차림은 바로 그 변하지 않는 것으로 향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의 의식은 흔들리는 갈대를 볼 때 단지 그것만 본다. 그는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네'라고 생각한다. 그는 갈대를 보지만 갈대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갈대의 흔들림을 알아차림 하면 있는 그대로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본성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단지 갈대의 흔들림 그 자체만 알아차린다. 누가 갈대의 흔들림을 알아차리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본성을 자각하기 전에 그랬었다. 본성을 자각한 후부터는 다르게 느껴졌다. 갈대의 흔들림을 알아차림 하면 그 변화를 알아차리는 변하지 않는 본성을 함께 자각한다. 변하지 않는 의식 안에서 갈대는 순간순간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