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견성)에 대한 글을 검색해서 여러 글을 읽었다. 사람마다 주장하는 게 조금씩 달랐다. 어떤 이는 자신의 명확한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다른 이의 경험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본성은 말이나 글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나도 3년 넘게 책을 읽고 동영상을 봤지만 본성을 체험하기 전에는 그 실체를 알지 못했다. 다만 관념으로나마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생각만 했고, 직접 체험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속단하지 않기로 했었다. 사전 지식이 있어서 좋은 점은 내가 체험한 것을 바른 정보로 비교해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지식도 없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체험이 옳은 것인지를 분간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그냥 넘겨버리는 경우도 있고, 다른 선각자를 찾아서 인증을 받으려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름대로 깨달음이 어떤 것인지 분별할 정도의 지식은 있었던 터였다. 경험하고 다시 점검해 보니 확신은 더 확고하다.
깨달음의 정도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있다. 초견성부터 확철대오 등 많은 말들이 있든데, 중요한 것은 본성을 본다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초능력이나 신비체험과 같은 것들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그런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좇을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나는 잔잔한 일상같은 깨달음이 더 좋다. 불필요하게 능력이 많으면 본성을 소홀히 할 수 있고 길을 잘못 나갈 수도 있어서 오히려 경계가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깨달았는지 아닌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가 보다. 하기야 본성을 본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니 먼저 깨달은 사람이 확인해 주지 않으면 본인이 모를 수도 있다. 다행히 나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내가 본성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자각했다.
깨어있음과 본성을 보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본성을 보기 전에는 나는 단지 깨어있음을 했다. 깨어있음은 눈 앞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생각에 빠지지 않고, 어떤 사물에 빠지지 않고, 욕망에 빠지지 않고 눈에 비치는 그대로, 귀에 들리는 그대로, 몸에 느껴지는 그대로 아는 것이다. 생각이 일어나거나 욕망이 생기면 그것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 하는 것이다. 이 상태를 몇 달 집중적으로 했었다. 물론 오래 전부터 조금씩 해오던 것을 올해 집중적으로 한 것이다.
초기에 깨어있음으로 세상을 볼 때에는 보는 내가 있었다. 눈 앞의 세상이 보였고, 세상은 맑고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보는 내가 의식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보는 내가 있다기 보다는 의식만 있게 되었다. 의식, 즉 마음 안에 세상이 나타났다. 내가 본다기 보다는 그냥 의식에 세상이 드러나는 듯했다. 나라는 존재가 존재성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없이 그냥 세상은 어떤 원리에 의해서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 몸의 활동도 지켜보면 적절한 때에 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생각도 때에 맞추어 저절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본성은 자각되지 않았다. 드러나지 않은 본성은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나는 많이 답답했다. 도대체 깨어있음을 하면 무엇이 드러난다는 것일까? 이게 전부인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전부인데, 보이지 않고 처음과 끝이 없다는 그것이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다. 보는 자를 보라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 그 자를 언제까지 찾아야 하나 답답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책과 강의를 들으며 내 상태와 경험을 비교해 나갔다. 그 비교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성을 볼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도 직감했다.
본성을 본 그 주간은 유성천에 자주 나갔다. 벤치에 앉아서 하천을 거니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물에서 노는 오리와 백로를 알아차림 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을 보고, 연신 고개를 흔드는 강아지풀, 물결에 이그러지는 나무 그림자, 내 뒤로 지나가는 차소리 등 모든 것에 알아차림 하며 존재했다. 며칠 동안 간간히 알아차림에서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전의 알아차림과 분명 다른 것이 느껴졌다. 의식에 나타나는 것이 이대로의 세상인데, 눈 앞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아는 존재가 잠깐씩 느껴졌다. 분명 이전과 똑같이 보고 있는데, 갑자기 느껴지기 시작하는 이 보는 자가 뭐지, 하는 자각이 들었다. 미묘하고 설명할 수 없는 느낌없는 느낌이었다. 보는 자가 없는데 눈 앞에서 나타나는 것들 속에서, 변화와 함께 그것이 느껴졌다. 지나가는 사람과 그 변화 속에서 그것이 느껴졌다. 물오리들의 장난질 속에서 그것이 느껴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움직임에서 그것이 느껴졌다. 지나가는 차소리에서 그것이 느껴졌다. 즉 보이고 들리는 것과 함께 보이지 않는 무엇이 느껴졌다. 그것은 변화와 분리되지 않은 무엇이었다. 변화가 인식되면 그 존재도 함께 의식되었다. 겉으로는 다른 차이점이 없었다.
처음 며칠 잠깐씩 느껴질 때에는 그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전과는 좀 다르다는 것만 느꼈을 뿐 그냥 더 두고보자는 생각이었다.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분명해지면서 나는 확연히 알게 되었다. 내가 본성을 현상과 함께 보고 있다는 것을. 그 자각이 확실해지자 그 뒤로는 그 자각의 느낌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헷갈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분명해져서 지금은 언제든지 그 상태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생각과 옛습성의 힘이 강해서 의식이 한결같지가 않다. 대신에 실생활에서 본성을 잃지 않으려는 다양한 노력을 할 힘이 생겼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이 무척 기대되고 있다.
나의 본성 체험은 위와 같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다. 나는 변하지 않는 본성의 힘을 느꼈고, 그것은 내가 사는 현상 이면에서 늘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기에 이것 하나만 붙잡고 살아갈 생각이다. 말한 것처럼, 나는 다른 어떤 능력이나 신비체험도 아직 없다. 지혜도 탁월하게 생긴 것 같지 않다. 다만 본성을 알았기에 이전보다 책이 더 쉽게 잃혀지고 있다. 경전은 아직 제대로 읽지 않아서 내가 어느 정도 밝아졌는지 모르겠다. 경전은 아직 읽을 때가 아닌 듯해서 미루고 있다. 우선 본성의 힘을 더 기르는 게 순서인 것 같다. 너무 약해서 하루에도 수시로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다.
본성은 몸과 생각과 느낌과 다른 사람의 영향과 이 세상과 아무런 상관없이 오히려 그것들을 나타나게 하는 실체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우면서 세상의 근원이다. 세상을 드러나게 하는 공간이면서 세상과 함께 나타난다. 그 사실이 내 눈으로 직접 목격되고 있다. 현재 나의 본성 체험은 그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