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처럼 오늘도 새벽에 한 시간 걸었다. 걷는 동안 생각을 잠재우고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에만 의식하면서 걸었다. 세계는 내 마음 안에서 의식된다. 생각하지 않으면 보고, 듣고, 느껴지는 모든 것이 마음 안에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눈에 보이는 삼차원의 공간은 내 마음의 깊이다. 가까운 것은 가까운대로 먼 것은 먼 대로 보인다.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멀리 있는 소리는 멀리서 희미하게, 가까운 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려온다. 귀가 듣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그 깊이에 따라 그렇게 들려온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 발자국 소리, 숨소리, 팔이 흔들릴 때 옷깃에 스치는 소리, 뺨의 차가운 느낌, 손끝으로 지나가는 바람 등 가장 근접하게 느껴지는 것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그것과 동시에 차 지나가는 소리, 새 우는 소리, 사람 목소리 등이 거리에 따라서 들려온다. 이 모든 것이 내 의식 안에서 동시에 인식된다.
내 몸과 길 옆 나무들이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주차장에 차례로 세워져 있는 차들이 내 몸과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즉 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그냥 주변의 사물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모두가 동등하게 느껴진 것이다. 모두가 소중하거나 모두가 의미없는 존재들이다. 몸과 몸 밖은 하나였던 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나 자신이라고 여겼던 몸, 생각, 느낌, 의지 등이 나 밖의 세상과 같은 존재였다. 내가 나 자신을 중히 여긴다면 나 아닌 타인도 모두 중한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타인도 모두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와 타인은 구별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언어나 교육 혹은 강요, 확신과 같은 것으로 인식의 전환이 되지 않는다. 명확한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고 와닿아야 받아들여진다. 생각이나 이해로 느끼는 사람은 삶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내 몸이 길가에 서 있는 나무와 같은 존재라니 ……! 이전에 알고만 있던 사실이 오늘은 느낌으로 확 와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