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이 이리도 쉬운데 그 동안 보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다.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보는 것도 제대로 볼 수 없다. 눈을 뜨고 있지만 눈먼 상태라고 해야 하나.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게 이리도 쉬우면서 어려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운 지식이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지식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한다. 지식이 눈을 가리는 막이 되어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전에는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이 얼굴에 달린 눈으로 보는 줄 알았다. 사물이 망막에 비치면 그것이 좌우 시신경으로 바뀌어 뇌로 정보를 전달하여 뇌에서 영상을 재생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단지 현상적으로 시각 정보를 관찰한 것일 뿐, 단지 하나의 설명에 불과했다. 우리가 실제로 겪는 것은, 눈 앞의 세계는 몸을 포함하여 마음에 삼차원 세계로 펼쳐진다는 사실 뿐이다. 이것을 알아도 실감하지 못하면 알음앓이로 아는 것인데, 그 알음앓이를 벗어나서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과 의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의식이 많이 바뀌어 눈 앞의 세계가 마음의 세계라는 것으로 점점 명확해지는 시점이지만 지식과 관념이 종종 앞을 가리곤 했었다.
의식이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하니 그 속도가 무척 빠르다. 요즘 매일 느끼는 체감이 다르다. 지금도 책을 읽다가 문득 책과 나 사이를 바라봤다. 이미 내 몸이 내가 아니란 건 알음앓이 이상으로 진전이 된 상태이니 눈 앞의 책과 나 사이에는 큰 거리감도 없다. 다만 삼차원적 현상을 극복하는 게 문제가 되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지금 너무 자연스럽게 삼차원이 있는 그대로 느껴진다. 고개를 조금씩 돌리니 책의 모서리와 옆면이 보이고, 거리에 따라서 책의 디자인도 달리 보인다. 잘 모르는 사람은 내가 당연한 걸 말하면서 무슨 소리를 하나 의아하겠지만 평상시 보는 것과 확실히 인식이 다르다. 전에는 내가 본다는 인식이 더 강했다면, 지금은 보는 내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눈앞에 사물의 나타남이 있을 뿐이다. 주관을 의식하지 않으니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인다. 이런 상태는 의식이 맑을 때 유지된다. 하지만 생각이 일어날 때에는 방해를 받아서 예전처럼 인식한다. 단 요즘은 예전과 같지않게 있는 그대로 보는 시점이 더 길어졌다는 것이다. 이걸 글로 표현하기 참 난감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