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가 내리는 늦은 오후 우산도 쓰지 않고 한 시간 넘도록 걷다가 돌아왔다. 옷은 촉촉히 젖었지만 마음은 무척 유쾌하다. 유림공원 반도지 연못에서 한 동안 회색 두루미 한 마리와 야생 물오리 한쌍과 놀았다. 갑천이 바로 옆에 있어서 가끔 새들이 날아와 연못에서 놀다가 가곤 한다.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더니 내가 조용히 앉아서 바라보기만 했더니 이내 나를 그냥 자연으로 생각한 듯했다. 물오리 한 쌍이 얼마나 정겹게 서로간에 애정 표현을 하는지 미소가 그려졌다.
유림공원 한켠에 갑천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 도달하니 20대 젊은 아가씨가 우산을 쓰고 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곳에서 갑천 경치 사진을 찍은 듯했다. 비가 오는데 혼자서 바람 쇄로 왔나 싶은데 내가 들어서니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하늘도 잿빛이고 강물도 잿빛이었다. 강 가운데 백로 한 마리가 힌 빛을 내며 서성이고 있었다. 한두 무리의 물오리떼도 보였다. 모두가 평화로웠다. 아니, 내 마음이 평화로웠다. 세상은 내 마음을 반영하니 내 마음이 평화로우면 세상도 그렇게 보인다.
전망대를 나와서 지붕이 있는 높은 정자가 있는 또다른 전망대로 향했다. 그곳은 카이스트와 갑천 하류쪽으로 멀리까지 볼 수 있는 2층 전망대이다. 가까이 왔을 때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전망대에 사람이 보였다. 조금 전에 봤던 그 아가씨였다. 괜히 내가 신경쓰일까 싶어 전망대에 올라가지 않고 잠시 강변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걷다가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