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늘 있다.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여행을 하고, 취미생활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 자신만의 관심사를 실행에 옮긴다. 그러한 것들을 하는 중에는 보람도 있고 가치도 느껴지고 마음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 일이 모두 끝나면 텅 빈 마음은 그대로이다.
나도 수 없이 그걸 느꼈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일찍 해외여행을 한 경우였다. 1995년 20대 후반부터 여행을 했는데 그때부터 몇 년 사이에 20여개국 이상 다닌 듯하다. 여행할 때에는 마음이 꽉 채워지는 듯했다. 남들이 가지 못하는 곳을 나는 마음대로 다녔고, 자랑할 곳도 생겼고,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좋았다. 2001년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에는 엄청난 기대감도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바로 사업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감도 더 얻고, 사업 아이디어도 챙기고, 숨바꼭질 하는 나 자신도 찾아보려 했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텅 빈 마음은 경험했다는 위안 이외에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10여년 전부터 나는 미술을 너무 좋아해서 미술공부를 엄청나게 많이 했다. 내가 미술공부를 접을 때까지 5년 이상 집중적으로 공부한 듯하다. 내가 한 공부는 주로 철학, 미학, 미술사, 역사, 미술작품 분석 등이었다. 무엇보다도 작품을 읽는 식견을 키우고 싶었다. 작품을 읽으면서 삶의 여유를 갖고, 행복을 누리고, 어떤 하나에 전념함으로써 얻는 만족감도 누리고 싶었다. 미술관을 찾지 못해서 작품은 인터넷으로 주로 이용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유럽에 가서 미술관 순례를 제대로 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그 동안 참 많은 관련 서적을 읽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미술공부를 중단했다. 미술은 내 마음을 채우지 못했다. 무엇인가를 통해서 마음을 채운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글쓰는 솜씨는 없지만,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오던 습관이 있어서 늘 기록하는 걸 즐겼다. 그렇다보니 글을 쓰면 기분이 좋았다. 여기 삶의노트에 글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에는 즐거운데 다 쓰고 나면 허전해졌다. 마음을 글로 표현할 때에는 그 행위로 인해서 잘 몰랐다가 다 쓰고 나면 마음에 차있던 무엇이 도로 빠져나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다른 것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실행할 때에는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다 마쳤을 때, 혹은 어떤 목적을 이루었을 때에는 어느 정도 만족감은 있을지 모르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텅 비어 버린다. 그러다보면 다른 무엇으로 그 공백을 대체하려고 몸부림 친다. 그런 짓이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사람은 무엇을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마음을 채울 수 없다.
그런데 요즘 나는 본성을 본 후로 그 안에 만족이 있고, 채움이 있고, 그 자체로 평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새로운 세계 안에서 이전에는 만족될 수 없었던 그것들이 새로운 기회로 다시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즉 다른 의식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그 새로운 세상을 한번 살아볼 생각이 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피아노 연주이다. 일년 전에 시작하자마자 마음공부에 방해가 되어 중단했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좀 더 본성에 안착하면 피아노 연습을 시작해 보려 한다. 새로운 의식으로 말이다. 성공하면 다른 많은 것들도 시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할 때에도 충족감으로, 그것을 마쳤을 때에도 행복으로 늘 유지될 수 있다면 삶은 천국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 가능성을 믿지만 아직 실행해 보지 않아서 그 결과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 하지 않아도 앞으로 내 삶은 늘 천국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