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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홀로 떠나는 유럽 배낭여행
날짜: 2001년 05월 20일 ~ 06월 20일 (기간:32일)

16일째 - 베니스
2001년 06월 04일

2001년 6월 4일 월요일

오전 7시 10분.

밤새 단잠을 잤다. 하지만 아직도 잠이 부족한 듯하다. 이탈리아는 왠만하면 이동할 때 열차예약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못 가는 수가 있다.
오전 7시 18분이 이 열차는 베네치아로 출발한다. IC열차인데 얼마나 속도가 빠른지 기대가 된다. 내 옆에는 중국계 젊은이 한 쌍이 앉아 있다. 이들도 배낭여행을 온 것 같다.


오전 11시 15분.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 내렸다. 내일 오전에 로마로 가는 열차 좌석을 예약했는데 1등석은 자리가 없어 2등석으로 예약했다.
역을 빠져나오니 바로 앞에 운하가 흘러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수상버스를 타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의 왼편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은 호텔을 잡는데 시간을 많이 쏟지 않을 생각으로 별 하나짜리 호텔을 두드렸다. 오호라! 오늘은 왠일인지 숙소가 금방 구해졌다. 조금 전에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눈 붙일 곳을 이렇게 예비해 주신 모양이다. 어제보다 1,000L가 적은 9,000L로 투숙을 했다. 3층 312호인데 올라와 보니 쾌적하고 밖의 경치도 좋았다. 이 방은 베란다도 있어 거리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오늘은 기분 좋은 밤이 될 것 같다.


오전 11시 35분.

호텔을 나와서 호텔과 조금 떨어진 식당에 와서는 지금 고기가 든 빵을 하나 먹고 있다. 4,500L이다. 5,000L를 주었더니 500L 동전 하나를 준다. 콜라가 먹고 싶어서 500L로 되냐고 했더니 고개를 흔든다. 빵을 점심으로 하고 베네치아 여행 시작이다. 여긴 작은 도시여서 걸어서 금방 주요 부분을 다 볼 것 같다. 일찍 호텔에 와서 쉬어야지. 이런… 일기 쓰다가 빵을 씹었는데 종이까지 한 입 먹었다.


(
리알토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오후 12시 50분.

리알토 다리를 건너 미로와 같은 골목길을 뚫고 나와서 산 마르코 광장까지 왔다. 확 트인 넓은 광장에서 내 눈에 보인 것은 세가지 –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대리석 건물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 두칼레 궁전, 수없이 많은 인파와 넓은 광장을 가득 메운 모이를 줍는 비둘기들. 브뤼셀에서의 ‘그랑 플라스’ 이래로 맞는 아름다운 광장이다.


 

광장의 동쪽에 두칼레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9세기에 한번 만들어졌다가 15세기에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입구쪽 윗부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있는 성화가 그려져 있고, 그 양 옆으로도 종교화가 그려져 있다. 윗부분은 작고 뾰족한 탑들이 많고 지붕 중앙에는 4개의 둥근 돔이 얹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하고 있는데 내부에 진기한 예술품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궁전 바로 앞에는 종루가 있는데 기둥은 붉은 벽돌로 세워져 있다. 꼭대기에 사람이 조그맣게 보이는 걸 보니 꽤나 높다. 내가 앉은 곳 – 두칼레 궁전 맞은 편 – 오른쪽에서는 몇 명의 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야외 식당인 것으로 보인다. 손님들을 위해서 클래식을 연주하고 있다.


 

방금 신랑신부가 광장에 등장했다. 하객들을 뒤로 달고 유유히 비둘기들 사이로 지나오며 광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비둘기들은 갑자기 나타난 멋쟁이들 때문에 놀라 황급히 자리를 내어주느라 분주하게 날개짓을 하며 하늘로 솟았는데 그 광경이 정말 멋졌다.
신랑신부가 광장 중앙에 이르자 멕시코 풍의 복장을 한 아저씨가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며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신랑신부는 환하게 웃으며 축하송을 반겼고 간혹 서로 사랑의 입맞춤도 했다. 이들은 결혼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광장으로 찾아오나 보다.


(
탄식의 다리)

오후 1시 35분.

광장을 돌아서 ‘탄식의 다리’로 갔다. 한번 건너면 죽을 때까지 되돌아 건너올 수 없다는 곳. 다리 건너편에는 쇠창살로 막은 창이 줄줄이 보였다. 죄수들이 갇힌 방인 것 같다.
바닷물이 바로 옆에까지 들어와 있다. 건너편 섬에는 교회 같은 붉은 색 건물이 보인다. 이곳은 곤돌라와 배가 유난히 많다. 모두 사람들을 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이곳은 날씨가 덥다기 보다는 따뜻하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산 마르코 광장에 다시 앉아 태양을 쬐며 뛰어 노는 비둘기랑 경치를 즐기고 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내 옆으로 지나간다. 선두에는 가이드가 깃발을 들고 앞서가고 있고, 그 뒤로 어른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졸졸 따라가는 모습이 마치 병아리가 어미 닭을 좇는 모습 같다. 배낭여행이 좋은 것은 지금과 같이 나 혼자 편안히 광장에 앉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그것이다.
왠만하면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이 너무 부시다.



오후 3시 30분.

산타마리아 역 앞에 있다. 이곳은 걸어서 몇 시간만 돌면 왠만한 것은 다 본다. 그래서 숙소가 있는 역 근처로 되돌아왔다. 베네치아 분위기가 정말 아기자기하다. 집도 무척 촘촘하게 지어져 있고, 그 사이로 크고 작은 운하가 연결되어 있어 그 운하를 타고 곤도라가 유유히 유람을 하고 있다.
이곳은 교통수단을 모두 배로 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하루 이곳을 다니면서 차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 정말 재미있는 도시다.


오후 4시.

와인 작은 것 한 병을 사서 호텔로 들어왔다. 6,500L 주었다. 호텔 프런트에 앉아 있는 중년 여자의 눈빛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동양인에 대한 경계심이 보였다.

키를 받아들고 방문을 여니 긴장감이 풀렸다. 옷을 갈아입고 발을 씻고 사과 하나를 한 입 물었다. 너무 맛있었다(지금도 먹고 있음). 건너편 집 창문으로 한 여인의 머리가 보인다. 옆모습인데 뭔가 생각하며 어떤 일에 전념하고 있는 것 같다. 간혹 살짜기 한 노인의 모습도 보인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자세히 보고 있는데 둘이서 뭔가를 연구하거나 아니면 제자가 스승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베란다로 나가고 싶지만 혹시나 방해가 될까 방에 콕 박혀있다. 노인이 발을 거닐다 사라졌다. 여인은 계속 고개를 숙이며 하던 것에 전념하고 있다. 그 집 벽에는 피카소 그림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여자 그림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노인이 다시 그 젊은 여인의 곁에 와서 앉아 이다.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할머니 한 분이 두 사람 앞에 서 있다가 사라졌다. 얼굴을 살짝 보니 고집이 있어 보이고 강인해 보인다.


오후 8시.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오후 8시가 다 되었다. 오후에 샀던 와인을 마시고 있다. 달콤하다. 저녁을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다. 빵이라도 하나 먹어야 하는지……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30분 뒤에 잠깐 나갔다 오자.

다른 나라에서 이렇게 밤을 보내는 것도 재미있다. 색다른 흥겨움이 느껴진다. 주위의 분위기가 달라서 일 것이다.
내일은 드디어 로마로 향한다. 로마로 들어가는 것이다. 비록 강성했던 시절 승리의 면류관을 쓴 장군처럼 입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나름대로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입성을 하는 것이다. 로마를 끝으로 내 여행의 2/3는 막을 내린다. 로마는 내일부터 시작해서 4일 머물게 될 것이다.

와인을 조금씩 마시고 있는데 조금 진한 것 같다. 머리가 띵~ 하다. 잠깐 나갔다가 빵을 하나 먹고 바람을 좀 쏘이고 오자.


오후 9시 30분.

프론트에 키를 맡기고 나오려는데 아저씨가 새벽 1시에 문을 닫으니 그때까지는 꼭 오라고 하신다. 난 알았다며 1시간만 있다가 돌아온다고 말한다는 것이 그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Yes, I will get back after 1 O’clock”.(직역하면, “예, 1시 이후에 돌아올 겁니다.” ^^)”
그랬더니 아저씨가 눈이 둥그래지면서 1시 이전에 꼭 오라고 몇 차례 당부했다. 난 내가 실수로 말을 한 것을 알았지만 ‘OK’ 하고 웃으며 그냥 나와버렸다. 1시간 후에 돌아온다는 의미로 사용했는데, 한국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해 콩글리쉬를 사용한 것이다.

역 앞의 야경이 멋지다. 사람들이 나와서 계단에 낮아 대화를 나누거나 야경을 즐긴다. 유유히 흐르는 운하를 따라 여전히 곤도라가 떠다닌다. 그리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있는데 달무리가 져서 무지개 색을 만들고 있다. 정말 멋진 야경이다.

이야~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나서 모처럼 경찰차라도 보는가 했더니 운하를 가로지르는 경찰 보트다. 신나게 빨간불을 밝히며 물 위를 가로지른다. 이제 다시 들어가야겠다.

호텔. 오후 9시 40분.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자유가 있어 좋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좋다고는 하지만 한 영혼에게 찾아오는 고독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혼자서 호텔에 있으니 외로움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절박함이 찾아온다. 그냥 무시하며 넘기면 아무런 일도 없겠지만 내 영혼을 진정시키고 고요 속에 잠기면 한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고독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를 실감나게 한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하는 그 순간은 모두가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한 순간에 자신을 덮치는 혼자라는 그 고독감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강인함의 강도가 결정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어느 정도는 강함이 있다고는 할 수 있으나 아직 이 세상을 온전히 이길 만큼의 파워는 많이 부족하다. 앞으로의 몇 년은 그것을 보강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등록날짜: 2007년 0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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