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6일 수요일
오전 10시 10분.
민박집에서
해주는 맛있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로마시내 관광에 나서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50인의 광장’이다. 중앙에 높은 분수대가 있고
4명의 여신상이 사각형 모양으로 그 여신상을 받들고 있다. 그 분수대 옆에는 ‘디오크레치아노 목욕탕이 있다. 4세기 초에
건립되었고 최고 3천명까지 목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건물은 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어 쌓아 올렸기 때문에 온통 붉은색이다.
그리고 지금은 군데군데 많이 허물어져서 그곳에서 발굴한 유물과 목욕탕 건물만 볼 수 있다.
스페인 광장 쪽으로 가기
위해 큰 대로를 따라 걷는데 무척 오래된 교회 하나가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 호기심이 발동해 안으로 들어서니 내부가
호화찬란하면서도 아담한 교회였다. 교회의 앞면에는 많은 성화가 벽에 그려져 있고, 바닥은 색상이 있는 대리석으로 무늬를 만들어
장식해 놓았다. 그리고 양 옆으로는 고해실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담당을 하는 신부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천정은
아주 큰 통나무를 장식해서 박아놓았는데 전체가 나무로 덮혀있다. 정말 멋진 교회다.
오전 11시.
큰 길을 따라서 스페인 광장으로 간다는 것이 너무 많이 지나서 베네치아 광장까지 와 버렸다. 이곳이 어디인지 몰라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책에 있는 설명을 읽어보고 지도를 확인하고서 대충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은
베네치아 광장 바로 옆에 있다. 내 정면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마상이 높이 서 있다. 그리고 뒤에는 ‘투라야누스
원주’가 수많은 조각으로 새겨진 채 곧게 서 있다. 이곳은 유적지가 상당히 많이 보인다. 지금부터 하나씩 둘러볼 생각이다.
어떤 남자에게 콜로세움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길을 안내해 주신다. 일본인이냐고 물어서 난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나더러 집시들을 조심하란다.
조금 전부터 내 옆에 앉아 있던 로마 청년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로마 사람이 동양 사람을 좋아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은근히 내 옆에 와서 이것저것 물으며 말을 건네니 재미있다. ^^
(포로 로마노)
정오 12시.
‘포로
로마노’에 와 있다. 6세기 경에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던 곳. 전에 사진으로 봐서는 작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대부분 붉은 벽돌로 만든 건물과 흰색 대리석으로 올린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원로원 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훼손되어 있다.
길은 큰 돌을 깔아 만들어져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 돌길이 여기에서도 형성되어 있다.
지금
나는 ‘티투스 개선문’ 옆에 있는데 이 개선문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기념으로 서기 81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이 문을지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는 이렇게 오래도록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포로
로마노’가 한 눈에 보인다. 지금은 듬성듬성 풀도 자라고 왼편 외곽에는 화제로 불이 났는지 검게 탄 건물 잔해도 많다. 땅에
쓰러진 원주도 있고 목이 잘린 동상도 있어서 마치 폐허같다. 하지만 로마가 가장 왕성했을 그 당시에 이곳이 얼마나 번잡하고
웅장했을 곳인가는 짐작이 간다. 저 너머로 콜로세움이 보인다.
(콜로세움)
오후 1시.
콜로세움에
입장하기 위해서 10,000L를 지불했다. 4층으로 지어져 있는데 중앙에 나무 다리를 놓아 아래 지하를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지하에는 맹수를 가두어 두거나 여러 가지 기구를 두었던 장소라고 한다. 이곳은 잔혹한 게임이 많이 벌어졌다는데 그것을 q고
열광했던 수많은 군중이 상상된다.
건물은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렸다. 가끔 대리석도 섞여 있으나 가로 세로 30Cm * 20Cm 벽돌이 대부분이다. 콜로세움 전체를 쭉 둘러보고 있는데 그냥 봐도 튼튼하게 잘 지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오후 1시 40분.
콜로세움 옆 잔디 위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빵에 소시지 2개를 넣어서 만든 것인데 8,000L 주었다. 정말 무서워서 식사를 못 할 지경이다. 너무 비싸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 먹어야지 어쩔 수 없다. ^^
(진실의 입)
오후 2시 30분.
‘진실의
입’이 있는 교회에 와 있다. 교회 입구 왼편에 그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서는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사진을
찍는다. 내 앞의 연인은 진실의 입에 서로 한 손씩 넣고서 사랑스런 대화를 속삭이더니 키스를 했고, 내 옆의 두 연인은 서로
번갈아가며 손을 넣은 사람에게 뭔가를 질문해서 진실의 답을 얻고 있었다. 거짓말을 했다가는 아마도 손이 물려 나가겠지? ^^
교회는
무척 오래된 것 같다. 바닥은 무늬를 놓은 돌로 깔려있고 천정은 나무로 되어 있다. 벽은 특별한 장식이 없어 밋밋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고풍스러워 아늑한 분위기를 준다. 이곳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도 나와서 유명해진 곳이다.
(도미네 쿠오바디스 교회)
오후 3시 40분.
난
지금 베드로가 로마를 떠났다가 로마 근교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던 바로 그 자리에 와 있다. 지금은 그곳에 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도미네 쿠오바디스(Domine quo Vadis)’ 교회이다. 이곳까지 오는데 1시간을 넘게 걸어왔다. 걸어오는 거리 만큼
고독한 여정이었다. 카라칼라 목욕탕에서부터는 대로마의 동방으로 향하는 길이 이어진다. 이 교회는 ‘카라칼라 욕장’에서부터 1시간
정도 걸어 내려오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 작은 길로 접어들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찾지는 못할 것이다. 나도 로마인에게
물어서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도미네 쿠오바디스’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는 뜻이다. 그 당시 로마의
박해를 피해 도망을 갔던 제자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어딘가로 향하는 예수님을 향해서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었다. 예수님은 ‘너 대신 로마로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려 한다’ 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그 말씀에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로마로 돌아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한 것이다. 이 실화는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
자리에 꼭 와 보고 싶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떠나 도망을 갔던 그 발걸음, 내가 한걸음 한걸음 이곳을 향해 걸을 때마다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 또한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베드로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죽음의 도시 로마로
돌아간 것처럼 나 또한 나의 부끄러운 삶을 죽이기 위해 다시 로마로 들어간다.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 제가 어찌 주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이
교회 입구를 지나서 들어서면 바닥에 두 발자국이 찍힌 돌이 있다. 이것이 누구의 발자국인지는 몰라도 베드로의 발자국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손으로 그 발자국이 새겨진 돌을 꼭 보듬어 보았다.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제 나는 다시 로마로 돌아간다. 새로운 마음을 담고 ……
(판테온)
오후 5시 45분.
베네치아
광장에서 골목을 돌아 마침내 판테온(Pantheon)을 찾았다. 외형은 둥근 원형을 그리고 있고 앞에는 동그란 기둥이 지붕을
바치고 있다. 로마에 현존하는 고대 건물 가운데 가장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고 했는데 기대가 되었다. 입구를 통해서 판테온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내부의 전경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말했다는데 기하학적인 이 구조물은 누가 봐도
찬탄을 금치 못 할 것 같다. 내부는 둥근 원으로 되어 있는데, 바닥은 다양한 색상의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기하학 무늬로
디자인되어 있고, 벽면 또한 원주 기둥과 노란색의 대리석으로 사각형의 무늬를 만들어 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천정 중앙은
오목하게 보이도록 직경이 약 5미터 정도 넓이로 하늘을 향해 뚫어져 있다. 그래서 그 사이로 태양빛이 들어와서 내부를 밝히고
있다.
(판테온 내부)
(트레비 샘)
트레비 샘. 오후 6시 30분.
판테온을 빠져나와서 표지판을 보고 골목을 좇아 ‘트레비 샘’에 왔다. 폴리 궁전 뒤에 붙은 벽면을 이용하여 조각을 했는데 바다의 신 넵툰과 트리톤이 약동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 양쪽에는 두 여신이 있고 그 아래에는 트리톤이 말의 머리털을 휘어잡는 모습이 있는데, 왜 가만히 있는 말의 머리털은 쥐어잡는지 모르겠다. 말을 타든지 아니면 엉덩이를 두드리든지 하지 ……
물
위에서 번쩍 빛이 나길래 보니 사람들이 등을 뒤로 하고 동전을 던지고 있다. 동전 하나가 샘에 들어가면 로마에 다시 오고, 두
개가 들어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개가 들어가면 이혼을 하게 된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한 개 혹은 두 개를 던지는 사람은
있어도 세 개를 던지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바닥에 동전이 많이 깔려있는데 오늘 밤에 …… 으흐흐흐 (이러면 안 되겠죠?)
지금 중국 사람들이 줄줄이 내 앞으로 와서는 사진을 찍는다. 내 시야를 다 가리고 있다.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 오후 7시 40분.
젊은이들이
엄청나게 몰려있는 스페인 광장에 와 있다. 계단 앞 분수대 앞에서 카우보이 스타일의 남자가 기타를 치며 재롱을 부리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이곳 젊은이들의 호응이 좋다. 이곳은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것 같다. 방금 기타를 치며 재롱을 부리던
남자가 코카콜라 큰 사이즈 컵을 들고 광장 계단을 누비며 답례로 돈을 받고 있다. 난 계단 중간 지점에 앉아 있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는 오지 않았으나 컵에 상당한 동전이 쌓였다.
꽃을 파는 남자도 있다. 연인들만 찾아가서 꽃을 내민다.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구경거리가 된다. 앉은 사람은 계단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을 보라보고,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그들의 사진 속에는 아마도 내 얼굴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이곳에 온 장면이 있는데, 영화의 그 장면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꽃을 들고 계단
오른쪽 기둥에 서 있었는데, 그 기둥은 바로 내가 앉은 곳 앞에 서 있다. 참 신기하다. 내가 영화 속의 무대에 와 있다니.
왼쪽 골목에서 햅번이 머리를 잘랐었는데 그 이발소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 당시 영화에서는 세트장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이 올까 했지만 아직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날짜가 로마에서 겹쳐지는데 여태 못 만난 것이 좀 이상하다. 다른
도시에서는 생각지도 않게 최소 2번 이상은 마주쳤는데…… 배가 슬슬 고파지기 시작한다. 숙소에서 저녁이 나오지만 돌아가기 까지는
아직 많이 기다려야 하는데 걱정이다.
민박집에서. 오후 10시 40분.
스페인
광장 계단에서 집에 가기 위해 일어섰을 때 … 이런!! 내 엉덩이 느낌이 좀 이상했다. 바닥에 페인트 칠을 한 것도 아닌데
‘부지직’ 거리며 접착되었던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엉덩이에 대고 만져보니
오른쪽 엉덩이에 엄청난 크기의 껌이 쩍 펴져서 붙어있는 것이었다. 청바지 하나로 지금까지 견디어 왔는데 이걸 이렇게 망쳐놓으면
나더러 어떻하라고… 민박집까지 걸어서 1시간이 더 걸리는데 너무 창피해서 가방으로 엉덩이를 가려가며 와야했다.
최대한 껌자국을 벗겨보았지만 자국은 여전했다. 이런 때 휘발유가 있어야 하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무슨 방법이 있겠지.
오늘은 거의 12시간을 걸어 다녔다. 온 몸이 너무 피곤하다. 곤하게 잠을 잘 것 같다. 내일은 오전에 좀 서두르고 저녁에 일찍 쉬도록 하자. 나폴리와 폼페이를 다녀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