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족산은 내가 사는 유성에서 반대 방향에 있다. 아침 10시가 지나자 집을 나섰고 102번 버스를 타고 한남대학교 북문에 내려서 314번 버스를 탔다. 동순당공원이 종점이어서 그곳에서부터 계족산황톳길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출발하기 전에 네이버 지도를 보면서 길을 봐놨는데 가다보니 조금 더 빠른 길이 보여서 경부고속도로 아래 터널을 지나 곧장 산으로 향했다. 텃밭에서 기른 농장물을 늘어놓고 무인판매를 하는 곳이 있었는데 돼지감자가 먹음직스러웠다. 산에서 내려오던 어떤 부부가 배추를 집더니 돈을 꺼내어 박스에 넣었다. 산을 오르면서 시계를 보니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계족산황톳길은 이번에 처음 방문했다. 오래 전부터 한번은 가봐야지 했는데 선듯 나서지를 못했다.
산을 올라가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초반에는 경사도 거의 없다가 10분 쯤 올라서니 조금씩 급경사가 펼쳐졌다. 하지만 계단을 잘 만들어 두어서 길은 험하지 않았다. 올라가는 중에 갈래길이 보여서 어떤 아주머니에게 황톳길을 가는 길을 물어보기도 했다. 한참 올라가는데 위에서 아주머니 말소리가 들렸다. 두 분이서 수다를 떨면서 천천히 쉬엄쉬엄 산을 오르고 계셨다. 내가 뒤따라오는 걸 느끼고는 내가 먼저 지나가기를 원했던지 길을 비켜주었다. 약 30분 정도 산을 오른 후에야 황톳길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계족산황톳길을 걷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길 전체가 황토로 덮혀있는 것이 아니라 길 오른쪽에 한 사람 정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만 황토를 깔아서 걸을 수 있게 해 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을이어서 황토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맨발로 걷는 사람은 고사하고 길을 걷는 사람 자체가 드물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산이 나에게는 더없이 좋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걷기 시작했다. 계족산 둘레를 13.5km 걸어야 한다. 걷다가 되돌아 올 수도 없다.
20분 정도 걸으니 계족산성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보였다. 지도 위치를 살핀 후 황톳길을 벗어나 산성을 향해서 산을 올랐다. 2km 이상 올라가야 계족산성을 만날 것 같다. 계족산황톳길에 오면 계족산성에는 꼭 가봐야지 했었다. 인터넷으로 그곳 사진을 많이 봤고 그곳에서의 전망도 너무 좋아보여서 꼭 방문하고 싶었다. 산성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경치도 얼마나 좋은지 내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산성 남문에 가까이 이르자 뒤에서 요란한 여자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아주머니들인가 싶었는데 산성에 도착해서보니 20대 후반의 젊은 아가씨 3명이었다.
계족산성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너무 아름다웠다. 저 멀리 대청호도 보였으나 오늘 안개가 낀 날이어서 아주 맑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먼 풍경의 시원한 전경에 가슴이 시원했다. 3명의 숙녀들은 쌓아둔 돌성 위에 올라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경치 좋은 장면을 잡아서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계족산성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면 1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어야했기 때문에 시간을 더 많이 잡아먹었다. 울창한 나무 아래 바위에 자리를 잡고 싸온 김밥과 과일을 꺼내어 먹었다. 대청호를 바라보며 김밥을 먹는데 너무 즐거웠다. 계족산성에서는 1시 10분에 도착해서 2시 40분에야 다시 황톳길로 돌아왔다. 지도를 보니 전체 황톳길에서 1/3 정도 지나왔다.
계족산성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해 버렸다. 천천히 걸었다가는 날이 저물어서 산을 내려갈지도 몰랐다.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나만의 낙엽밟는 소리를 내며 걷고 있었다. 고요한 산속을 나 홀로 걸었다. 그 느낌이 어찌나 좋고 황홀한지 모르겠다. 황톳길은 느슨하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었다. 걷기에 적절한 강약 리듬을 두어서 건강에 유익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산속의 풍경 또한 인공적인 것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흙길에 좌우로 자연 그대로였다. 대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참 축복이다. 매일 이 길을 걷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지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달에 한두 번 정도 걷는다면 딱 좋은 장소이다. 황톳길의 풍경은 산을 한바퀴 도는 동안 거의 같았다. 하지만 자연의 다채로움 때문에 전혀 지겹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나 홀로 걷는다. 계족산황톳길은 영상에서처럼 이런 분위기가 전체의 길 모습이다. 영상 시작에는 내리막길이었다가 3분 후에는 오르막길이고 마지막에는 다시 내리막길이다. 이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경사가 심하지 않고 리듬을 타기 때문에 운동 효과도 높다. 길을 걷는데 앞에서 뭔가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고양이였다. 아마도 오른쪽 산아래 마을에서 올라온 듯했다.
황톳길 올라왔던 입구에 이르자 오후 5시 10분이었다. 이제 산 아내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다행히 날이 완전히 저물지 않아서 내려가는 동안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황톳길과 계족산성 모두 포함해서 5시간 정도 걸었고, 산을 오르내리는 시간까지 합하면 약 6시간 걸었다. 그런데 다리가 약간 피곤한 정도였지 아프지는 않았다. 계족산황톳길은 무척 마음에 든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도 자주 방문해서 걸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