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책을 읽는 동안 마음 속에서 계속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룡산에
가야지? 얼른 준비해. 어서 가."라고.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본래 오늘 계룡산에 가려고 했지만, 그저께 수통골 도덕봉에
오른 후 감기 기운이 계속 있어서 며칠 쉰 다음 계룡산에 가려고 했었다. 오늘은 감기 기운이 사라졌지만, 아침부터 계속 마음
속에서 재촉을 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냥 무시하려니 후회를 할 것 같았다. 필요한 물건들을 모아서 가방에 넣었다. 산에는 날씨가
조금 추울 수 있어서 오늘은 조금 더 두꺼운 옷을 입었다.
집을 나서면서 편의점에 들러 김밥 두 줄을 샀다. 아침을 먹지 못해서 산을 오르기 전에 하나 먹고, 산 정상에서 하나 먹을 생각이었다. 그것 외에도 떡과 과일과 옥수수와 견과류와 보온병 커피를 가방에 담아 갔다. 실제로 산에 가면 많이 먹지 않는다. 대부분 그냥 가져오지만 혹시 모를 비상용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충남대 앞에서 102번 버스를 타고 유성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107번을 갈아 타면 되었다. 충남대 앞을 지나면서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하다보니 버스 정류소를 지나쳐서 터미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중간에서 102번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길이 맞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터미널까지 가서 107번 버스를 바로 탔다. 버스를 타면 약 20분 만에 계룡산 입구에 도착한다.
계룡산 입구에 늘어선 상가들
계룡산 입구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30분 가까이 되었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들이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조용한 산행을 할 것 같았다. 계룡산에 도착했을 때에는 삼불봉을 올라서 능선을 타고 관음봉을 지나 동학사 방향으로 내려오려고 했다.
동학사 매표소
동학사 매표소에서 3,000원을 주고서 표를 끊었다. 매표소 옆에 손 소독제가 놓여져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손을 소독하고 다시 올랐다.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
산을 오르려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젊은 남녀 몇 쌍이 동학사를 구경하려는 듯 거닐고 있었다.
동학사 계곡
동학사 계곡은 물이 거의 말라 있었다. 가을에 비가 너무 오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시월도 거의 후반으로 접어 들었는데 단풍도 생각보다 많이 물들지 않았다. 아마 11월 초에 절정을 보일 것 같다.
관음암
관음암을 지나고 있다. 왼쪽에 자라고 있는 나무는 석가모니가 명상을 했던 같은 종류의 보리수 나무라고 한다.
세진정(洗塵亭)
세진정을 앞에 두고 있다. 세진정을 지나서 동학사 대웅전이 위에 있다. 삼불봉을 오를려면 여기서 오른쪽 방향으로 산을 올라야 한다. 관음봉을 오를려면 세진정을 지나서 직진을 하면 된다.
남매탑 이정표
남매탑까지 1.2km이다. 남매탑은 삼불봉 아래 5km 지점에 있는 탑이다. 그곳까지 약 1시간 소요될 것 같았다.
삼불봉으로 향하는 길
삼불봉으로 향하는 길은 아기자기 하면서 예뻤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산을 나 혼자 걸었다.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어찌나 예쁘든지 오르는 내내 행복했다. 길은 돌을 깔아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오르는 데에도 거의 힘들지 않고 걸었다.
삼불봉으로 향하는 길
산을 내려가는 수녀님 일행
한참 혼자 산을 오르는데 위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가까이 왔을 때 보니, 두 명의 중년의 수녀님이 각각 다른 여성분과 담소를 나누며 내려오고 있었다. 첫 번째 그룹은 그냥 옆으로 지나쳤다. 두 번째 그룹이 다가왔을 때 고개를 들고 수녀님을 쳐다봤다. 수녀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수녀님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쑥스러움에 목례만 하고 지나쳤다.
계룡산의 숲속
잠깐 바위에 앉아서 쉬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주변을 둘러봤다. 고요했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냥 계속 자연 속에 있고 싶었지만, 땀이 식으니 또 추위가 왔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남매탑에서
드디어 남매탑까지 왔다. 잠시 숨을 돌리고 탑 주변을 둘러 봤다. 그 사이 내 뒤로 사람들이 또 올라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올라온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들이 한켠에 마련된 쉼터에서 식사를 했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김밥을 먹을 생각으로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삼불봉 정상까지는 500m 거리이다. 300m를 오르면 산 능선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갑사로 향하게 된다.
삼불봉 정상에서
삼불봉 정상에 올랐다. 아무도 없었다. 사방은 구름에 가려져서 마치 신선이 된 양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잠시 뒤에 아주머니 두 분이 올라오셨다. 아주머니는 구름에 가려진 풍경이 좋았던지 연신 감탄을 자아냈다. 두 사람은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할 참이었다. 미리 눈치를 채고 "사진 찍어드릴까요?"하고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좋아했다. 두 사람은 포즈를 취하고 나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줬다. 그 사이 다른 노년의 부부가 또 올라왔다.
본래는 삼불봉에서 능선을 타고 관음봉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정면 능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자연성릉은 생각보다 조금 위험한 구간이다. 마침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다는 느낌도 있어서 오늘은 삼불봉 등산한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삼불봉 정상에서 파노라마 사진을 찍었다
삼불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겼다
삼불봉에서 남매탑으로 다시 내려가는데 아주머니 두 분도 함께 내려갔다. 두 분은 갑사와 신원사에도 방문할까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내가 몇 발자국 앞서 걷다가 그냥 무시하기가 그래서 그곳을 가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유성에서 그곳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보여 주었다. 아주머니들은 신원사와 갑사가 동학사보다 더 유명한 지를 물었다. 나는 신원사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과 연계되어 있어서 유명하고, 갑사는 수필의 내용 때문에 많이 알려졌다고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남매탑
남매탑은 오른쪽 상원암을 곁에 두고 있다. 나는 탑을 둘러보며 오랫동안 주위를 맴돌았다. 탑 중간에 작은 돌들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본래 탑의 돌이 아닌 것 같은 돌도 하나 보였다. 탑을 복원하는 중에 본래의 것이 아닌 것을 끼워넣은 것 같았다. 그리고 돌들 사이에 틈이 있어서 작은 돌로 보완을 한 것 같았다. 등산객 몇 명은 탑 뒤로 가서 두 손을 모으며 절을 했다.
남매탑 이야기
남매탑
남매탑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조금 전에 사람들이 앉아 식사를 하던 쉼터로 가서 벤치에 앉았다.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고 탁자와 벤치는 많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자신이 앉아 먹었던 장소는 깨끗하게 정리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깨끗한 곳에 앉아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김밥과 사과를 꺼내어 먹었다. 몇 명의 청소년들이 산을 올라 이곳까지 왔다. 다른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지도 교사 한 명을 따라서 작은 물병만 하나씩 갖고 온 것 같았다. 두 명의 여학생이 내 곁으로 와서 벤치에 앉으려다가 계속 두리번 거렸다. 그나마 내 주변이 가장 깨끗한데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무리로 돌아갔다. 내 곁에 앉았으면 먹을 걸 좀 주려고 했는데 아쉬웠다.
상원암
상원암은 조용했다. 몇 명의 등산객이 출입금지 푯말을 넘어서 마당으로 진입했다. 하지 말라는 짓은 왜 그리도 골라서 하는 지 모르겠다. 남매탑 옆에서 봐도 이렇게 훤하게 보이는데 말이다. 이곳에서 보이는 단풍은 멋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서 오래 있고 싶은데 그래도 내려갈 시간이다. 약 한 시간 남매탑에서 보낸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제일 오래 머무르지 않았을까 싶다.
내려가는 길
산을 내려가는 길이다. 내려가는 길도 올라올 때와 같이 나 혼자였다.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어찌나 황홀한 지 모르겠다. 걷는 내내 나는 나무이고, 풀벌레 소리이고, 바위였다.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사용했던 나무 지팡이
사진 왼쪽에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나무 막대가 있다. 처음 산을 오를 때 바로 여기에 저 나무 막대(지팡이)가 놓여져 있었다. 누군가 사용하고 이곳에 세워둔 것이다. 나는 산을 오르고 내려올 때까지 저 막대를 지팡이 삼아 걸었다. 그리고 같은 장소에 그대로 두었다. 내일 누군가 저 막대를 짚고 산을 오를 것이다.
동학사 대웅전
산을 내려와서 대웅전에 잠깐 들렀다. 대웅전 앞마당 벤치에 앉아서 대웅전을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이곳에 오면 마음이 평화롭고 기분이 좋았다. 한 여인이 대웅전으로 들어가더니 불상을 향해서 절을 몇 번 하고 다시 나왔다. 잠시 동안 나는 마음을 텅 비우고 앉았다. 몸에서 피로가 몰려와서 오래 있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계룡산 입구
계룡산 입구 버스 정류장이다. 저 멀리 솟은 바위 봉우리가 멋졌다. 107번 버스가 오려면 조금 기다려야 했다. 나는 홀로 서서 저 봉우리를 마음에 담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로 다가가고 있었다. 만약 삼불봉에서 자연성릉을 타고 관음봉으로 갔다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을 것이다. 그곳으로 가지 않고 바로 하산한 것은 선택을 잘 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연성릉을 지나야 한다면 더 일찍 계룡산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해가 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산할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