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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영혼, 죽음 등

인간 탄생에 대해서 오랫 동안 의문을 가졌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의 탄생은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서 이루어진다. 태초 이전부터 탄생의 신비가 하나님 안에서 이미 계획되어 있다고 성경말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탄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신비스럽게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없을까 늘 궁금해 했다. 그것은 성경의 저자 자신도 탄생의 비밀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의 세계는 신비이다. 살아서는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다. 모두가 추측이거나 전설같은 신비스런 이야기 뿐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탄생이 윤회설과 관련이 있다. 윤회설은 두 종류가 있는데 영혼 윤회설과 무아 윤회설이 있다. 영혼 윤회설은 사람이 죽고 난 후 영혼이 되어 떠돌다가 남녀가 성관계를 맺을 때 수정란과 결합하여 아래야식(제8식)이 결합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아래야식이란 이전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기억되는 모든 생명활동을 말한다. 그것이 죽을 때 육체를 벗어나 영혼으로 중간세계에 떠돌다가 윤회를 한다는 것이다.
무아 윤회설은 아래야식과 같은 윤회의 주체가 없고 이전 사람의 업만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그 업은 단지 상속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성격으로 연속되는 것이어서 이전 사람의 업에 대한 책임이 없이 윤회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과 사가 반복된다는 것이 불교의 탄생이다.

유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윤회를 믿지 않는다. 한 사람의 탄생은 이치와 음양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는 혼을 이루고, 체는 백이라 하며, 사람이 태어나는 까닭은 정기가 응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 년 전에 탄생 전에 사람의 영혼이 어디에 있다가 오는지 많은 생각을 했었다. 물론 기독교적 신앙관에서 생각을 했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이라는 곳에 간다는데, 탄생 전 영에 대한 이야기는 교회에서든 모임에서든 책에서든 제대로 얘기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하나님은 태초 이전부터 우리를 택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태초 이전부터 우리의 영혼은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내 탄생 이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육체는 없었다치더라도 혼이라도 있었다면 무엇이라도 기억은 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죽은 후에는 귀신이라도 있다. 비록 기독교에서는 귀신을 사람의 영혼으로 안 보고 사탄의 변신 혹은 부리는 귀신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지만, 귀신이라고 나타나는 실체를 보면 모두 한때 살았던 사람의 혼으로 나타나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쨌든 탄생 이전보다 죽음 이후의 정보는 더 풍부한 것이다.

최근 나는 탄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내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론 도출을 시도했었다. 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순간 많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육체는 어차피 물질이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혼에 관한 수수께끼였다. 윤회하는 것인지, 탄생 시 발생하는 것인지 그것을 아직 풀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교육하고 있다. 지금도 거의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그 가르침을 신앙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 간다는 그 천국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환상을 보거나 기록된 것을 참고로 말할 뿐이다. 따라서 자명하지가 않다. 진실이라고 믿기도 어렵다.

최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고를 많이 했다. 관련 글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했다. 그 결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내세를 위해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살아있는 현세에 그 의미를 두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구절들을 다 찾아서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즉 성령으로 거듭나면 이 세계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절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같은 세상을 보지만 거듭나야 보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세상은 생노병사가 있는 인간의 세계로 보일 뿐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이 죽으면 가야 할 세계가 어디 있을까 의문점이 남게 된다. 사람에게는 영·혼·육체가 있다. 이 영(靈)은 성령이다. 보통 '내 영'이라고 표현을 많이들 하든데 내 속에 있는 영은 하나님의 영이다. 단지 개체적 한 인간으로서 내 속의 영을 보니 마치 하나님의 영과 독립된 영으로 느껴져서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지, 성령과 내 영은 같은 영의 다른 시각에서의 이름일 뿐이다.

여기에서 한가지는 밝혀졌다. 내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영은 내가 태어나기 전이든, 살아있는 동안이든, 죽은 이후에든 늘 한결같이 그대로 존재하는 성령이라는 것이다. 이 영은 탄생도 죽음도 없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는 본래 흙이 그 본질이다. 생기가 없으면 흙이 되고, 생기를 가지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생기는 그 실체를 설명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설명이 되어질 수 있다. 생기도 그 창조질서에 따라서 인간에게 주어졌다가 사라졌다 하는 것이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혼(魂)이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고, 기억 덩어리라고도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내세에 간다고 하는 실체가 바로 이 기억을 가진 혼이란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죽으면 이 혼이 저 어딘가에 있을 하나님 나라에 간다고 생각하고, 불교는 윤회를 한다고 생각하고, 유교는 죽음과 동시에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전생을 본다는 사람들이 있다. 불교에서 수련을 오래 한 사람들은 자기 전생을 본다고 한다. 그래서 윤회설이 의미를 가진다. 기독교인 중에서 전생을 봤다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다. 다만 천국을 다녀왔다고 하는 사람은 봤다. 하지만 불교 신자들 중에서 천국을 다녀왔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본래 불교는 처음부터 천국 지옥이란 것을 갖지 않았다. 석가모니 때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차후 타종교에서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불교에서 천국 지옥은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천국을 본다거나 다녀왔다고 하는 사람들은 환상을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것도 창조해 낼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이 아무리 부정해도 마음을 공부한 사람이면 왠만한 건 들어보면 안다. 마음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현상학부터 시작해서 현대철학을 나열해야 하니 글이 복잡해질 수 있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보면 인간은 태어날 때 마음이란 것이 생겨나서 자라고 성숙해 간다. 즉 태어나기 전에는 혼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윤회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어나자 마자 죽는 아이와 어른이 되어서 죽는 아이는 내세에 있을 천국에 어떻게 가게 되는 것일까? 천국에는 모태의 애기부터 늙은이까지 골고루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 말도 못하고 사고도 못하는 아기 조차 새로운 형상으로 입혀져 어른과 똑같은 사고 관념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건 너무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고 본다. 더군다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까지 하니 천국에는 분명 말도 하지 못하고 죽은 어린 아이는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사고체계가 잡히지 않은 어린 아이도 당연히 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것으로써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단순히 믿는다는 것으로 저 어딘가 먼 곳으로 천국간다는 것은 생각의 여지가 많다.

참고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혼 개념은 잘 생각을 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영이란 독립적인 내 영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은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에 별도의 영이 있을 수 없다. 내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영은 성령이다. 따라서 성령은 내가 태어나기 전이든 후든 상관없이 늘 세계 속에 초월적으로 내재해 계신다. 내 몸은 태어나면서, 성령이 우주 속에서 내재하신 그대로 우리는 그 성령을 내재하면서 몸으로 탄생할 뿐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판단하는 그 '나'라는 것은 태어나면서 마음이라는 것으로 구체화되고 개체화 된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어딘가에 있을 천국에 가야 한다면 그 마음(혼)이 가는 것으로 설명 되어진다. 일단 그 혼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 정말 가는 곳이 있는지, 아니면 사라지는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되는지...... 성경 구약에서는 내세를 강조하지 않고 있다. 예수님도 현세의 하나님 나라를 강조했지 내세의 천국을 강조하지 않았다. 내세의 천국은 후대에 강조되어 교리로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들 외에도 다양한 사례를 더 들 수 있지만 사람이 죽을 때 혼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독교적 해답은 얻지 못했다. 단순히 어딘가에 있을 천국에 간다는 것으로는 논리적으로 해명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내세의 천국은 사람들의 상상의 산물이 더 지배적이다. 천국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너무 비유적이어서 그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내세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세의 것이라는 것이다. 

이 새벽에 대충 생각나는 대로 기록해 봤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기록해 보련다 ^^

 

 

이    름 :김무용
날    짜 :2015-12-30(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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