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세상을 인식하는 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오감을 통해서 세상을 감각한다. 다른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이렇게 인식하니 다른 사람도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는가 보다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세상은 오직 나에게만 인식이 된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가? 태어나지 않았으니 당연히 세상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으면 둘 다 없다.
몸은 세상 속 존재이다. 오감, 생각, 심지어 의식 조차 세상 속 존재이다. 세상 속 존재인 의식이 세상을 인식한다. 세상 속에서 몸이 태어나면 몸과 함께 의식이 나타나 주변 세상을 인식한다. 즉 의식은 세상과 하나이다. 의식은 몸에 의존하니 몸과 의식 모두 세상과 하나이다.
세상은 변화 속에서 한점 시간과 공간을 중심으로 끝없이 흘러간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한점 이전과 이후에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한점 이 순간에만 세상은 존재한다. 이것이 세상의 실상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태어나지 않은 자에게는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관념이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태어나지 않은 자는 세상을 경험할 수 없으니, 단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밖에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태어난 자는 분명히 세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육체가 죽으면 의식도 함께 사라지니 세상도 문을 닫는다. 죽은 후에도 세상은 존재하는가도 문제가 되지만 어차피 같은 성격의 질문이므로 태어나지 않은 자에게 세상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대체할 수 있다.
태어나지 않은 자에게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환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내 경험상 환상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단지 실체가 없을 뿐이지 경험은 확실히 된다. 실체가 없다는 것은 고정적이지 않고 계속 변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변화가 있어야 경험도 된다. 변화와 경험은 같은 의미이다. 변화가 없는 것은 경험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니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할 수 없다. 그러니 인간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없다.
(잠시 누워서 생각을 정리해 봤다.)
'태어나지 않은 자에게도 세상은 존재하는가?'라고 생각하는 나는 세상 속 인간이다. 어쨌든 내가 그 생각을 하는 건 관념 안에서의 생각이다. 따라서 답을 찾더라도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관념적 답인 것이다. 그런 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에게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인식되지 않는다가 맞는 것 같다. 태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직 완전하고 전체인 하나의 상태, 즉 하나님 자신인 것이다. 그 상태에서는 개체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을 인식할 수 없다. 세상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부분은 아래에 계속 쓰겠다.
만약 세상 하나만 존재한다면 하나로써의 세상은 그 자체로 의식되지 않는다. 다만 세상 안에서 개체적인 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식할 수 있다. 대상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너와 나가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개체적 의식이란 나와 너가 분리된 의식을 말한다.
사람에게서 어느 순간 눈 앞에 갑자기 세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태어났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눈 앞에 뿌연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해서 지금과 같이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아기들의 시야를 표현한 것을 봤는데, 처음에는 안개처럼 쌓인 세상으로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명확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태어난 자에게는 세상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아기는 자신의 탄생을 경험하지 못한다. 이미 태어난 후에 조금씩 세상이 경험된다.
사람이 태어나 보니 세상은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 그 자체도 세상의 일부이다. 즉 세상 안에서 그는 세상의 여러 사물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변하는 속성을 가지면서 세상은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의 이전과 이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변하는 한점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 변화가 나와 너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세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그 태초는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우주의 역사가 39억년이니, 6,000년이니 하는 것은 순전히 과학적 혹은 신앙적 관념이다. 그러니 솔직히 세상의 시작은 현 시점에서는 알 수 없다. 단지 태어나보니 이처럼 세상이 있다는 것 뿐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이 한점의 시공간에서만 세상은 존재한다.
하나님도 세상도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완전한 자에게서 어떤 것이 나왔다면 그것도 완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유출된 완전한 것은 이전의 완전한 것과 분리되면 안 된다. 둘은 하나여야 한다. 이것은 진리이다. 그렇다면 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것이 나왔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어차피 둘은 완전한 하나가 아닌가?
하나님과 세상은 분리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과 속성이 다른 본체일 수도 있다. 세상이 없다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관념이다. 완전한 무(無)에서 창조되었다는 것도 맞지 않다. 완전한 무(無) 이전에 이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완전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세상은 완전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은 지금 이 순간 시공간의 한점에서만 나타나는데, 그 나타남이 하나님 없이 나타나지 못한다. 표현상 하나님께 의존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변화가 생성하고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은 하나님 자체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한 사람에게서 세상은 그 사람만의 세상만 경험된다는 것이다. 내 의식에는 하나의 세상만 경험된다. 당신의 세상은 내가 경험할 수 없다. 내 세상이 있기 때문에 당신의 세상도 있을 거라는 생각만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인구 수 만큼 세상이 있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그 말이 맞음에도 그것은 관념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의 세상은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내 세상을 경험하다가 어느 날 죽는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될까? 내가 경험하는 세상은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가 죽기 전에는 그 사람에게서 유지되겠지만, 죽은 후에는 그 사람의 세계도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도 생각으로만 추측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함께 경험하는 세상은 존재할까? 예를들어서, 눈 앞에 사과 하나가 있다고 하자. 내 세계에서도 그 사과는 존재하고, 그 사과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세계에서도 그 사과는 존재한다. 다만 사람마다 그 사과의 모양은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사과 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세상이 똑같이 나타나는 게 하나도 없다. 비슷하게 인식될 뿐이지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모든 사람의 의식에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면, 모든 사람에게 보편타당하게 나타나는 공통의 세계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공통의 세계가 없다면 개개인이 경험하는 세상은 결국 환상이 되어 버린다. 즉 세상은 실체없이 각 사람의 의식에서만 그에게 맞춤 세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세상에 대한 설명이 맞는 것 같다.
정리를 하면, 한 사람이 태어나기 전에도 하나님은 계시고 세상도 있다. 하지만 세상 속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세계이므로 관념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태어나면 세계는 그만의 독립된 세상으로 나타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세상을 경험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경험을 참고해서 다른 이도 같은 경험을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가 경험하는 세상과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세상은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 않다. 그 같지 않음이, 변화와 구별 속에서 사는 개체적 인간에게는 당연하다. 만약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세상이 경험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변화가 사라진다. 변화가 사라지면 구별도 할 수 없다. 나와 너가 없어진다. 그런 상태라면 굳이 세상이랄 게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모든 사람마다 다른 세상이 경험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비슷한 세상을 경험한다. 그런데 그 세상의 원형이 없다면 어떻게 비슷한 세상이라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원형은 인간이 경험할 수 없다. 그 원형이 있을까? 플라톤은 있다고 했지만 그는 관념적으로 말한 것이다. 실제로 있는지는 인간이 알 수 없다. 어떤 인간도 그 원형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없다고 말해야 할까? 있다고 하면 관념이고,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수수께끼 속에 갖혀 버린다. 달리 생각하면, 변화는 것에는 원형이 없어야 정상일지도 모른다. 단지 변화만 영원히 존재한다는 게 맞을까? 즉 하나님은 변함없이 존재하고, 이 세상은 변화 속에서 영원히 존재한다면 그것이 성립이 될까? 그러면서도 하나님과 이 세상이 분리되지 않을 수 있는가? 아직은 명확한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많은 부분 깊게 접근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