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깼다. 지금 자정을 넘기고 있다. 발목펌프운동을 30분 하고서 영화를 봤다. 지구 멸망 1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마지막에는 지구가 불바다가 되면서 모두 타버린다. 사람도 다 죽었다. 그렇게 영화는 끝났다. 내가 살아 있을 때 그런 날이 올 지 모르겠다. 온다면 두 눈 부릅 뜨고서 마지막까지 세상을 보다가 죽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니 갑자기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가 생각난다. 주인공 니나는 죽음까지 사랑했다. 그녀는 죽는 순간 죽음까지 목격하고 느껴보고 싶어했다. 강렬한 삶의 의식이 한때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요즘 나는 순간에 살려고 노력 중이다.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일을 할 때나, 책을 읽을 때나 늘 순간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생각은 늘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생각은 순간을 흐리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존재하는 때는 순간 뿐이다. 1초만 지나도 삶은 실존을 잃어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