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걷는 새벽 시각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 시간 걷는데 전혀 지겹지가 않다. 같은 장소를 계속 걷다보면 대게 지겨워 한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운동을 많이 한다. 나도 예전에 그렇게 운동을 했다. 이어폰을 꼽고 좋아하는 가요를 들으며 걸었었다. 하지만 마음공부를 한 후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걷는 것 자체가 훌륭한 마음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내 의식은 늘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의식이 한 점에 집중되면 늘 보던 것이 지겹지가 않다. 왜 지겹지가 않느냐 하면 늘 신선하게 보여지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를 걸으면 당연히 같은 장면을 본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계속 변화 속에 있는 것을 그동안 생각은 같은 것이라고 단정해 버렸던 것이다. 생각하지 않고 보여지는 그대로, 들려지는 그대로 의식을 열어 놓으면 순간순간 신선한 세계를 접할 수 있다.
비가 오면 커다란 지렁이가 아스팔트 위로 기어 나온다. 크기가 거의 30cm 정도이다. 어제도 한 마리 발견해서 나무가지로 들어올려서 흙이 있는 화단으로 옮겨 주었다. 나뭇가지를 지렁이 아래로 집어 넣으려고 했더니 심하게 꿈털거리며 요동쳤다. 거의 공중으로 날리다시피 들어올려서 화단으로 던져 주었다. 오늘도 같은 크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뭇가지로 들어올렸음에도 축 늘어져서 힘을 쓰지 못했다. 기어다니느라 많이 지쳤던 모양이었다. 풀과 흙이 있는 화단으로 옮겨주니 길을 찾아서 기어갔다. 완전히 지렁이 살리기 프로젝트 같다. 생명은 소중하니 어쩌랴. 그냥 두면 틀림없이 밟혀 죽거나 말라 죽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주말에 했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봤다. 딸을 향한 윤진아(손예진 역) 엄마의 모습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너무 극적으로 상황을 몰라가는 듯 보였다. 아버지는 마음이 넓고 따뜻한데 엄마만 그렇게 유별나게 구는 건 좀 드문 케이스 같다. 실제로 그런 부모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드물게 있을 것 같다. 비슷한 상황으로 나도 젊은 날 당해 본 경우가 있어서 충분히 이해는 간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두 남녀 당사자의 마음이다. 드라마 처럼 부모가 너무 그러면 자식이 끝까지 불행해진다. 결국 부모도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사하는 것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