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갑천을 걸었다. 비가 온 후여서 강물이 불어 있었다. 풀잎과 꽃들도 빗물을 머금고 있었다. 모두가 싱그러웠다. 유림공원을 지나갈 때 보도블럭에 커다란 지렁이가 많이 누워 있었다. 제일 큰 것은 내 발다닥 두 배 가량 길이였다. 그 녀석은 돌아올 때에도 그 자리에 있어서 풀밭으로 던져주었다. 꿈털거리는 걸 봐서는 살아 있었다. 아마도 나는 지렁이 구원자인가 보다.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은 나와 둘이 아니다. 노랗고 아름다운 꽃, 녹색의 싱그러운 풀, 차가운 아스팔트,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아저씨, 유유히 흐르는 갑천의 물 이 모두가 나 자신이다.
이 모두가 나 자신이라고 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몸과 몸 밖의 세계를 구분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분하지 말고 그냥 전체를 받아들이면 된다. 이 모든 것이 내 의식 안에서 구성된다. 의식은 나와 분리되지 않는다. 의식 그 자체가 나의 표상이다. 그러니 세상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만약 저 꽃만 내 자신이고 나머지는 내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꽃이 느끼는 세상을 나도 그대로 느낄 것이다. 꽃잎이 떨어질 때의 아픔과 불어오는 바람의 감촉과 빗물의 차가움을 나도 느낄 것이다.
만약 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만 나 자신이라면 그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내가 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행복도 아니다. 어쩌면 고통으로 더 다가올지도 모른다. 타인으로 인해서 원하지 않는 것들과 더 많이 부딪혀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렇게 될 수 없으니 신통력을 갖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만약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감각을 그대로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 모든 사람의 감각을 느끼고, 모든 나무와 식물, 동물들, 공기, 바다, 땅, 아스팔트 등 모든 것을 내가 함께 감각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세상 전체라면 나는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감각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실제로 해보면 그렇게 된다. 전체는 곧 텅빔(空)과 같다. 비교대상이 없으니 존재 자체를 느낄 수 없다. 하나님은 전체이기에 텅 빈 공(空)이다. 어떤 일부분을 감각할 수 있는 존재는 상대적인 존재 밖에 없다. 전체 안에서 일부로 사는 상대적인 존재만 서로를 감각할 수 있다.
하나님은 참 오묘하시다. 내가 전체이지만 상대 세계에서 나 아닌 대상을 감각할 수 있도록 하셨으니 말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지각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나님 스스로는 어떤 것도 지각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세상 안에서 개체들이 서로를 지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을 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 배경에서 이 모든 것을 운영하신다. 하지만 이 세상과 하나님은 둘이 아니다. 둘이 된다는 것은 모순이다. 하나님과 세상은 하나이면서 다른 면이다. 하나님 안에 세상이 있고, 세상 안에 하나님이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안에 내가 있다. 저 노란 꽃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안에 저 꽃이 있다. 다른 모든 사물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과 세상은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