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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16일

늦은 오후 나의 산책길. 충남대학교를 지나서 유성천에 이르면 하천을 따라서 길게 난 이 길을 걸어간다. 길 왼쪽은 유성천이 흐르고 오른쪽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20년 전에는 이 길도 없었고 오른쪽은 미개발지역이어서 온통 밭이었다. 그때 자전거 타고 뚝 아래 길을 운동삼아 달리곤 했었다. 지금은 왼쪽 아래 산책길로 자전거도 많이 다니고 운동하는 사람도 많이 다닌다. 지금 내가 걷는 뚝길은 대체로 조용하다. 난 이 길을 무척 좋아한다. 지대가 높아서 하천을 전체적으로 내려다 볼 수 있고 가로수 사이에 난 이 길이 은근히 운치가 있다. 이 길을 걸을 때 마음공부가 잘 된다.    

유림공원에서 바라보는 갑천이다. 유림공원은 유성구청에서 관리하는 대전에서 나름 알려진 아기자기한 공원이다. 면적도 제법 넓고 갑천과 유성천으로 둘러쌓여 사방이 확 트였다. 공원 안에는 작은 반도지(연못)도 있고 화원과 잔디 공연장도 있다. 주말에는 제법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평일에는 대체로 한적하다. 이곳에 오면 유림공원을 한 바퀴 돌고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전에 이곳 갑천이 환하게 보이는 곳에 앉아서 이십 분 정도 명상을 한다. 명상이라고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물 흐르는 것을 보고, 물오리들 장난치는 거 보고,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는 거 보고, 강 건너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저 멀리 지나가는 차를 본다. 간혹 큰 잉어가 수면위로 물결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면 그 물결따라 시야를 옮기기도 한다. 그냥 눈 앞에 보이는 그대로 본다. 그러다가 눈을 감고 소리에 마음을 둔다. 마음을 비운 상태로 소리가 들리는 그대로 듣기 때문에 지겹지도 않고 무척 신선하다. 차 지나가는 소리가 가장 크고, 앞뒤 이곳저곳에서 새소리가 작게 들린다. 물오리들의 소리도 종종 들린다. 게네들은 날아갈 때 깩깩 소리를 지른다. 착륙할 때에도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가 자기네들 신호인 듯했다. 대체로 물오리들은 짝을 지어서 다닌다. 영역 다툼도 심하다. 멀리서 지켜보면 은근히 재미있다. 가끔 백로가 날아와서 물고기 사냥할 때도 있다. 뭐낙 큰 새여서 멀리서도 잘 보인다.   

유림공원 끝에 있는 이층 전망대 위에서 찍은 풍경이다. 위 사진은 전망대 왼쪽인데 유성천 끝부분에 해당한다. 바로 아래 사진이 유성천과 갑천이 만나서 저 멀리 흘러간다. 갑천의 끝은 금강으로 이어진다. 하천 건너편 보이는 건물들이 카이스트(KAIST)이다. 카이스트는 갑천을 옆에 두고서 뒤쪽으로 교정이 펼쳐진다. 사진 오른쪽 끝부분에 정문이 있다. 카이스트는 나와 인연이 깊다.    

전망대 정면 사진이다. 위 두 개의 사진을 나란히 붙여서 보면 하나의 풍경이 된다. 왼쪽이 카이스트이고, 잘 보이지 않지만 저 끝에 옛날 유명했던 엑스포과학공원이 있다. 지금은 다 철거되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전망대는 약 2층 높이다. 시야가 훤하고 시원해서 내가 꼭 방문하는 곳이다. 요즘은 이곳도 내 마음공부 장소가 되었다. 사람들도 잘 찾지 않고 나 혼자 있을 때가 많다. 저 멀리 강 하류를 바라보면서 전체 풍경을 시야에 담는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한다.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마음은 무척 평화로워진다. 세상은 너무나 조용하고 아늑해진다. 이것이 진짜 세상이다. 자아가 개입하지 않은 세상은 이렇듯 맑고 깨끗하다.  

전에는 신경써야 감지되던 것이, 오늘부터 더 미세한 자아까지 감지되고 있다. 보통 화나거나, 흥분하거나, 기쁘거나, 욕망하거나, 우쭐하거나, 비교하거나 등 여러 감정 및 의지를 발출할 때 자아가 작동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자아를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아의 움직임이 크기 때문이다. 마음공부가 깊어지니 그런 돌출적인 자아는 많이 죽어가고 대신에 잘 드러나지 않던 미세한 자아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세한 자아는 내가 눈 앞의 어떤 대상을 볼 때, 어떤 감정을 느낄 때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로서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다. 길을 걸는데 앞에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쳐다보게 된다. 보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고 있다는 자아가 느껴진다. 즉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내가 느껴진 것이다. 보는 내가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는 나는 사실 실체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것이 느껴졌다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느껴진 것이다.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느낄 수도 없다. 느껴졌다는 것은 그것이 대상이라는 것이다. 대상으로서의 나가 어찌 내가 될 수 있겠는가. 이런 의식은 마음을 많이 비우지 않으면 잘 못 느낀다. 의식이 눈 앞의 대상에만 있어도 잘 못 느낀다. 눈 앞과 내 몸 그리고 의식 자체에까지 의식이 뻗어 있어야 느낄 수 있다. 이런 자아까지 걸러내어야 견성할 수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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