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1편을 봤다. 첫장면에서 손예진이 사귀던 남자한테 차인다. 남자는 무미건조한 관계가 싫어서 헤어지는 것이라 말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어린 여자와 양다리를 걸쳤던 것이다. 손예진은 남자보는 눈이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몇 명의 남자를 만났지만 모두 헤어졌다. 30대의 손예진.
30대의 나는 어떠했나? 손예진과 비슷했다. 20대에는 연애 한번 못 해봤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 여자를 좋아하다가 고백을 했는데 그녀에게 심한 모욕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정리를 빨리 하지 못한 탓에 나를 진정으로 아끼는 여자를 보내버린 일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서 나를 떠나 보내던 날 나에게 한 다발의 편지와 노트를 보내왔다. 나에게 보내지 못했던 편지와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글들, 그것들을 읽으면서 나는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 세월이 흐르면 나는 그녀를 떠나 보냈던 것에 대해서 분명 후회를 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여자보는 눈이 없는 나의 한계였다.
30대에 몇 번 여자를 만났지만, 여전히 여자보는 눈이 없어서 모두 헤어졌다. 30대 중반까지 몇 번 그렇게 헤어지니 결혼할 생각을 버리게 되더라. 지금 나는 결혼하지 않은 것이 너무 좋다. 결혼한 가장으로서 받는 무게와 구속에서 상당히 멀어져 있다고나 할까. 나는 무척 자유롭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자유를 유지하며 살 것 같다.
30대 초에 유일하게 '이 여자와는 결혼을 하겠구나' 했던 여자가 있었다. 정말 좋아했는데, 서로 결혼해서 잘 살아보자 얘기도 했었는데, 어느 날 헤어지자고 하더라. 그날 데이트를 마치고 자동차 앞 좌석에 앉아 조심히 가라고 인사를 하는데 할 말이 있단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정말 힘겹게 힘겹게 '우리 헤어져요!' 라고 한마디 내뱉더라. 그 한 마디를 얼마나 망설이며 어렵게 말하던지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안스러워 위로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헤어지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가 싫어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한 갑작스러운 환경과 그것으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를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날 그녀가 헤어지자고 말할 때, 그녀는 이미 마음으로 결정한 것이구나 하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나는 그녀를 이해했기에 그날 헤어짐을 받아들였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그녀의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살짝 닦아주고 뺨에 키스를 해 주었다. 그리고 자동차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걱정되어 아파트 창문으로 내다보니 그녀는 한참 그 자리를 지키다가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 나갔다. 우리의 이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 당시 나는 운전을 할 줄 몰라서 그녀가 나를 태우고 다녔다. 운전면허증은 그 다음해 발급 받았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일주일 넘도록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녀의 가까운 친척은 그녀의 그런 소식을 들려주며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켰지만 나는 이미 안 돌아올 것을 알았다. 헤어지는 날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녀와 결혼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 삶은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자기 삶을 선택했고, 나도 내 삶을 선택했다. 그녀를 많이 좋아했지만 그녀와 결혼하지 않은 것은 서로에게 다행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볼 때 그때 결정은 서로에게 옳았다고 생각된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원하는 삶을 만들며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내가 선택한 삶을 만들며 잘 살고 있다. 그녀와의 만남은 기뻤지만 헤어짐도 후회가 없다. 남녀가 결혼해서도 서로의 삶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남남으로 헤어져도 서로의 삶은 존중되어야 한다. 나는 그녀가 꼭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래야 나와 헤어진 것이 헛되지 않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