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에서 매주 하고 있는 <비긴 어게인>을 우연히 알게되어 시즌1부터 보고 있다. 윤도현, 유희열, 이소라, 노홍철 이렇게 4명이 유럽 도시를 다니며 버스킹을 한다. 시즌1 제9회를 보고 있는데 스위스 몽트뢰 레만 호스가에서 공연을 한다. 유희열과 이소라가 <그대안의 블루>를 듀엣으로 노래한다. 유희열 목소리는 오랫만에 듣는다. 이제는 가수의 티를 많이 벗은 자연인(?)스러운 면이 있어서 정겨웠다.
유희열은 그가 20대 토이 시절 내가 직접 만난 적이 있다. 1997년 가을로 기억하는데, 그때 우리 회사에서 인터넷 음악방송을 진행했었다. 나는 녹음을 위해서 서울 음악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초대 가수로 왔고 나는 담당 제작자로서 자리를 같이 했다.
당일 나는 대전에서 급하게 시외 버스를 타고 강남버스터미널에 내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선릉역까지 갔다. 약속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얼마나 급하게 서둘렀던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겨우 시간에 맞추어 스튜디오 건물에 도착해서 2층으로 뛰어 올랐다. 계단을 올라서 2층 입구까지 뛰어 올랐는데 갑자기 시커먼 그림자가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어두운 색 바바리 코트를 입은 두 사람이 입구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가 후다닥 올라오니 둘이서 얘기하다가 놀랬는지 살짝 나를 내려다 봤다. 나는 속으로 초대손님으로 오신 가수인가 생각하면서 그들 앞을 스쳐쳐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DJ는 가수 양진석씨가 맡았다. 그는 이미 와서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양진석씨를 양선생님이라고 호칭했다. 그와는 매주 한번씩 그렇게 만나서 인터넷 방송 녹화를 했고, 그는 매주 가수 한 사람을 초대해서 대화를 나누면서 노래를 틀어주었다. 유희열은 그렇게 방문한 가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김장훈 외 여러 유명한 가수들도 초대손님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담당자로서 그들과 인사하고 진행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남들은 쉽게 만나지 못하는 가수들을 나는 면전에서 매주 만나 인사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말이다.
잠시 뒤에 입구에서 봤던 두 사람이 들어왔다. 양진석씨가 유희열을 나에게 인사시켜줬다. 다른 한 사람은 그의 매니저였다. 미소담긴 목례로 인사를 하고 바로 녹화에 들어갔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유희열을 잘 몰랐다. 회사에서 인터넷 음악방송을 시작하고 가수들을 초대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충분히 조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엔지니어 출신인데다 갑작스럽게 음악 방송 제작을 맡게 되었었다. 그날 초대손님으로 올 때에도 미리 연락을 받지 못해서 사전에 누가 오는지도 모른 상태였다. 초대가수는 양진석씨가 책임지고 모셔오는 것이라 굳이 내가 알 필요는 없었고 당일 만나서 진행해도 문제가 없었다. 방송진행은 양진석씨와 담당 작가가 모두 준비를 했기 때문에 나는 기술적 문제와 방송녹음, 그밖의 여러 지원만 잘 하면 되었다.
유희열에 대한 첫 이미지는 지금과는 달리 무척 신비로웠다. 긴 머리칼에 정장 차림이었고 지금처럼 날씬한 몸매의 적당한 키, 차분한 말투 등 안개 속에서 막 등장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약 1시간 넘게 녹화를 마치고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사인도 하나 받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밤에 대전으로 내려와서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아직까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가수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몇 주 지나자 TV 음악 프로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점점 유명세를 타면서 몇 년 되지 않아서 탑 클래스에 올라섰다.
그 후 가끔 그의 노래를 듣긴 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TV를 보지 않아서 그의 노래를 못 들었다. 목소리도 거의 잊었는데 오늘 버스킹에서 노래하는 것을 들으니 정겨웠다. 지금은 가수보다 프로듀서로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유희열이나 나나 모두 세월 속에서 늙어간다. 우리 모두 무르익은 청년이거나 살짜기 중년이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60세까지 청년으로 쳐주든데 나이를 잊고 지내니 청년인지 중년인지 모르겠다.
스위스 레만 호수는 나한테도 남다른 추억이 있다. 2001년 5월에 혼자 유럽배낭여행을 가서 제네바에 이르렀을 때 그날 하루 특별히 좋은 호텔에 하루 묵으면서 온 종일 레만 호수를 거닐며 휴식을 가졌었다. 그 전에 매일같이 너무 무리하게 배낭을 매고 걸어서 제네바에 도착하면 꿈같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제네바에 도착 후 어렵게 특급 호텔을 잡고 바로 거리로 나와서 레드 와인을 한 병 사서 호수가를 걸었다. 분위기는 그들이 버스킹 하는 호수가와 비슷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병째로 와인을 마시면서 생각에 잠겼다. 너무 평온했다. 버스킹을 보고 있자니 같은 레만 호수, 같은 분위기, 같은 사람들 ... 모든 것이 다 비슷해서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 밤 늦게까지 호수를 거닐다가 피곤하면 잠시 벤치에 앉아서 호수와 사람들을 구경하며 생각에 잠겼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제일 많이 생각한 듯하다.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데 아주 멋진 아가씨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내 앞을 달려 지나갔다. 그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한결같이 음악을 들으며 운동을 했다.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냥 달리면 참 심심할텐데 음악을 들으며 달리면 재미가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귀국 후 나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오랫동안 밤마다 카이스트를 달렸던 적이 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당시 음악 들으면서 운동한다는 생각은 잘 못했다. 의외로 레만 호수에서 그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