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걷기를 하면서 갑천에 이르면 전망대에 앉아서 한동안 물끄러미 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다. 며칠 전부터 얕은 물가에 잉어들이 짝을 지어서 장난을 치고 있다. 커다란 등지느르미로 물결을 만들며 물장구를 치는 모습이 무척 앙증 맞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모습에 놀랐는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옆사람에게 신기한듯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물오리들 중에서도 간혹 깡패같은 것들이 있다. 괜히 주변에 있는 다른 오리들에게 시비를 건다. 날개짓을 하며 몇 미터 쏜살같이 물살을 가르며 달려든다. 그러면 다른 오리들은 놀래서 멀찍이 도망간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디를 가든지 갑질을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게 자연인가 보다.
흐르는 강 사이에 퇴적물이 쌓여서 풀도 자라고 갈대도 자랐다. 바람에 갈대가 살며시 흩날렸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하늘거리는 갈대를 바라보며 마음을 비웠다. 눈 앞에 자연이 펼쳐졌지만 그것은 모두 내 마음 속이다.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간혹 잉어가 펄떡이며 물장구를 치거나 오리가 날개짓을 할 때면 의식에 금이 가서 평화가 깨어지곤 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없으신 곳이 없다고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 말을 믿어왔다. 하지만 어디에도 계시는 하나님을 나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간혹 이것이 하나님이 계신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은 적은 종종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감각을 느끼거나 환상을 봤을 때, 내가 간절히 기도해서 원하는 대로 결과가 만들어졌을 때 등 눈으로 볼 수는 없었으나 일상에서 그런 경험을 통해서 이것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은 모두 내 착각이었다.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만 하나님을 찾으려했던 무지함의 소산이었다. 그럴수 밖에 없었던 것이, 늘 계시는 하나님을 일상에서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특수한 상황에서의 경험을 하나님의 체험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것에서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 방언이나 예언, 환상, 치유, 감동, 눈물, 예배, 전율, 기적과 같은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다. 그런 특별한 것이 아니면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모두가 평범함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못하니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것들은 특별한 것들도 아니다. 단지 일상적인 것보다 덜 나타나는, 조금 다른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요즘 나는 일상의 폄범함 속에서 하나님을 본다. 갑천의 갈대의 흔들임 속에서, 야생 물모리 한쌍의 다정한 데이트를 보면서, 잉어들의 행복한 몸부림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생생 달리는 사람들 속에서, 잔디밭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의 걸음걸이를 보면서 나는 하나님을 함께 본다. 하나님은 이렇게 늘 우리 삶 한가운데에 함께 계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러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볼 수 없다. 만약 하나님을 직접 본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가 본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이거나 환상인 것이다. 현상계에서 절대계를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렇다면 절대계는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절대계는 현상계와 하나이다.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즉 절대계는 현상계를 통해서 함께 나타나는 것이다. 달리말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신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은 곧 하나님의 경험이다.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볼 수 없지만 그 드러남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맑고 깨끗한 호수가 있다. 그 호수는 너무 맑아서 눈으로 봐서는 물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호수에 물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돌을 호수에 던져보면 안다. 돌을 던지면 퐁당 소리를 내면서 물결을 일으킨다. 그 물결의 파장을 보면서 호수에 물이 있다는 것을 안다. 물과 파장은 성격이 다르지만 둘은 하나이다 물이 없이는 파장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도 그런 의미이다. 하지만 물결의 파장만 보는 사람은 물이 있다는 것을 모를수도 있다. 뭔가 동그란 파장이 퍼지지만 물은 어디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진정 달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일상적인 현상을 보고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저것은 그냥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일 뿐이고, 장난치는 물오리 뿐이고, 물장구치는 잉어일 뿐인데 하나님이 어디있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현상의 근원에 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책망을 하신 것이다. 진리는 우리 일상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지만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예전에는 나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마음공부를 하고 눈이 뜨인 후로는 순간순간 하나님을 본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날마다 행복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본성을 보는 날 내 마음은 휴식을 얻을 것이다. 지금은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다. 하지만 지옥보다는 천국을 보는 날이 더 많다. 천국은 순간순간 자아가 숨을 죽일 때 언제든지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고 하신 말씀은 그런 의미이다. 자아가 살아있으면 천국을 볼 수 없다. 자아는 우리 육신이 죽기 전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순간순간 자아를 억제할 수는 있다. 자아가 숨을 죽이면 그 사이로 성령이 나타나고 천국을 드러낸다. 십자가를 단순히 고난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니다. 십자가는 사형도구이다. 즉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님처럼 날마다 자아를 죽이고 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