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하나의 상황일 뿐이다 ……. 자기의 직위와 봉급, 자기 일의 성격에 의해 완전히 자기의 정서와 사고까지도 규정지워진 …….
- 사르트르, 《Situation II》
전혜린 에세이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앞 페이지에 나오는 사르트르의 글귀이다.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전혜린 책을 읽을 때마다 이 글귀를 접했다. 인간이 그렇게 규정되는 것이 맞다고 경험적으로 많이 공감했다. 요즘은 그런 공감 이상으로 인간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문화, 전통, 관습, 종교, 법, 교육, 예술, 역사 등 모든 부분에 의해서, 그런 것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 사회가 형성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진다. 한국에 태어났으면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프랑스에 태어났으면 프랑스 문화의 한 사람으로, 미국에 태어났으면 미국민의 한 사람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만약 이주가 일어난다면 그럴 때마다 그곳에 머무르는 문화가 그 사람의 정신에 깃들 것이다. 종교가 더 중심적인 사람은 그가 믿는 종교의 영향이 그 사람을 지배할 것이다.
인간이 자신이 속한 장소와 문화 속에서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몸과 생각 그리고 정신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그대로 형성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변한다. 그 변화의 결과가 우리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라면 저러해야 한다, 혹은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라고 해도 소용없다. 인간이기 때문이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