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의 세계는 삼차원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다. 가까운 것은 선명하게 먼 것은 희미하게 보인다. 눈동자의 초점이 맞으면 선명하게 보이고 그 주변은 흐릿하게 보인다. 아마도 눈동자의 초점과 입체감은 서로 관련이 있는 듯 느껴진다.
두 눈을 같이 뜨고 앞을 보면 입체감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서 잘 판가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쪽 눈을 가리고 앞을 보았다. 역시 가까운 것은 선명하게 먼 것은 희미하게 보였다. 그렇게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눈 앞의 세상이 평면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거리에 따라서 선명하거나 희미한 것은 있다. 하지만 분명 평면적인 시각이었다. 한 장의 풍경화 사진을 보면 가까운 것은 선명하게 먼 것은 희미하게 보인다. 비록 삼차원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분명히 종이위에 그려진 이차원적 사진이다. 한쪽 눈으로 보면 세상은 바로 사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가깝다고 여기고,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멀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성이 그렇게 판단을 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장면과 기억된 장면을 대조해서 똑같거나 유사한 것을 기억으로부터 가져온다. 그 영상을 마음에 투사해서 다른 감각의 기억과 함께 심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삼차원의 이미지가 마음 안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간혹 사물을 다른 것으로 잘못보는 때가 있는데 이때는 이성이 엉뚱한 기억을 꺼내어 펼쳐놓는 경우라고 봐야한다. 쉬운말로 헛 것을 봤다고 말한다. ^^
눈에 보이는 세상은 마음 속이다. 마음 속에서의 눈이 마음 안을 보고 마음 안의 기억과 비교해가며 마음 안에 세상을 그려간다.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 마음 밖에는 세상이 있는가? 칸트는 알 수 없다고 말하고, 후설은 그런 세상은 없다고 말한다. 즉 실재계는 없고 오직 현상계만 있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도 같은 주장을 한다. 그 뒤 많은 철학자들이 실재계는 없고 현상계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실재계는 절대계이다. 따라서 그런 의미로써의 절대계는 존재한다고 말하는 철학자도 있다. 보수적 기독교는 마음 밖에 실재계가 있고, 하나님 나라인 절대계가 별도로 있다고 여긴다. 불교는 현상계와 절대계가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즉 절대계의 표현이 현상계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내 결론은 이러하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같이 감각적인 것은 정신 안에서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가상의 세계이다. 정신에 의해서 구성되고 조합되어 정신에 나타나는 세계인 것이다. 정신 밖의 세계는 별도로 존재하는가? 즉 눈 앞에 보이는 나무가 정신에서도 나타나고 실재의 그 나무가 정신 밖에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존재한다고 하면 그것은 생각이고 가정이다. 그 나무는 절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없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마음 밖의 세계는 경험적으로는 없다고 하는 것이 옳다. 절대계는 있는가? 현상계는 절대계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배경없이 전경이 있을 수 없는 원리와 같다. 하지만 절대계가 있고 현상계가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되면 두 세계가 공존하게 되어 진리에 위배된다. 현상계는 절대계와 하나이다. 현상계는 절대계의 또 다른 모습이다. 두 세계는 분리할 수 없다.
하나님과 우리가 사는 세계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현현(顯現)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없다. 세상이 하나님과 질적으로 같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하나님과 하나이다. 하나님이 없이는 세상도 없고, 세상이 없이는 하나님도 없다. 세상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은 관념이다. 절대계인 하나님은 상대계인 이 세상이 없이는 인식되지 않는다. 내 존재가 없는데 하나님이 있다 없다 말하는 것은 관념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