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책『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몇 달 전에 사 두었었다. 때가 되면 읽어야지 했는데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몇 년 동안 여러 번 읽고 다른 관련 책들도 읽어야 제대로 이해되겠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주 생소한 것은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칸트의 저서를 먼저 읽을 것을 요청했으나 나에게 아직 칸트 책이 없어서 읽지를 못했다. 하지만 칸트 관련 강의를 많이 들어서 순수 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등 그의 사상은 어느 정도 알고는 있다. 따라서 이 책 읽는데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쇼펜하우어 강의가 있나 싶어서 유튜브를 찾아봤는데 아주 짧은 것 말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서 그리 인기가 없는 것 같았다. 니체가 이 책을 읽고는 쇼펜하우어를 엄청 따르게 되었다는데 약 100페이지를 읽고 있는 지금 나도 그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첫 장을 읽기 시작하면 상당히 멋진 말이 나온다. 처음부터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 이 말은 삶을 살면서 인식하는 모든 존재자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다. 그렇지만 인간만이 이 진리를 반성적·추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인간이 실제로 이를 의식할 때 인간의 철학적인 사려 깊음이 생겨난다. 그럴 경우 인간은 태양과 대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보는 눈과 대지를 느끼는 손을 지니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 즉 세계는 다른 존재인 인간이라는 표상하는 자와 관계함으로써만 존재한다는 것이 그에게 분명하고 확실해진다. 어떤 진리를 선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인도철학이나 불교철학에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칸트 이후의 현상학에 대한 내용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것도 요즘 내가 늘 말하는 현상계의 세계를 말한다. 내가 보는 세상은 몸 밖이 아니라 의식 안에서 펼쳐진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