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 해도 우주는 아마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우리가 아는 바로는 인간의 주관성을 그리워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 『사피엔스, Sapiens』유발 하라리
최근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만큼 나를 긴장시킨 책도 없을 것이다. 근래 내가 탐구하고 생각하고 찾던 문제의 해결을 그가 일부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이념주의자나 종교신봉자가 읽게 되면 불쾌감이 들 수도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과 문화를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만든 상상의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상상의 질서를 믿음으로 떠받치는 인간들에게는 치명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게 되면 마음이 몹시 불편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나에게 참 신선하다. 왜냐하면 최근 내가 분석하고 연구한 이 세상에 대한 이해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에 많은 의미부여를 했다. 그것이 좋은 결과를 맺을 때도 있지만 그러하지 못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화폐, 권력, 종교, 이념, 국가, 민족 등 이런 모든 개념들이 인간사회를 유지하고 서로를 결속시키고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인간만의 창작물임에는 틀림없다. 여러가지로 내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