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 지나갔다. 다음주부터 다시 습지길을 걸을 생각이다. 겨울 동안 활동이 너무 적어서 몸이 많이 망가졌다. 내 몸은 겨울을 잘 적응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못해서 겨울에는 늘 움추려들고 비활동적이 되어 힘겹기만 했다. 며칠 전부터 집앞 잔디 운동장을 돌고 있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이다. 며칠 전부터는 갑자기 허리에 통증이 왔다. 디스크가 찾아 온 것이다. 어릴 때부터 허리가 좀 좋지가 못했다. 더군다나 20대 초에 2년 가까이 막노동을 해서 허리가 많이 상했던 것도 있다. 내가 한 막노동은 벽돌운반이었다.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80kg~100kg의 벽돌을 지게에 지고 운반을 했다. 돈이 제일 많은 일이긴 했지만 그 만큼 힘든 일이기도 했다. 그때 허리에 좀 무리가 오는 걸 느끼고는 그만 두었다. 세월이 지나도 몸은 다 기억을 하는가 보다.
(2016년 5월 습지길. 오른쪽으로 유성 갑천이 흐르고 있다)
습지길을 걷으면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기본이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유성에서 유일하게 문명의 흔적이 가장 적은 장소여서 그곳을 걸으면 내 정신은 휴식을 얻는다.
습지길을 걸을 때 나는 참 유심히 땅을 쳐다본다. 혹시나 지나가는 벌레나 개구리 등을 밟을까 싶어서이다. 간혹 뱀도 내 앞을 지나간다. 마른 잎사귀 사이를 뱀이 지나가면 '스르르륵~' 소리가 들린다. 살짝 긴장하고 눈길을 주면 뱀 꼬리가 땅바닥 나뭇잎 사이로 사라지는 것이 목격된다.
나는 건강과 휴식을 위해서 그곳을 걷는다. 나의 방문은 내 의지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이끄심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하심에 감사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함이 나 아닌 다른 생물체들에게는 최악이 될 수도 있다. 즉 내 발바닥에 밟혀서 즉사하는 생물체가 수없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야 내가 피해간다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벌레는 모두 다 밟혀서 상처를 입거나 죽었을 것이다. 작년에 습지길을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하심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들을 죽이지는 않으실텐데, 왜 하나님이 나에게 선하심을 드러내신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답을 얻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히' 선하심을 드러내신 것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하나님이 특별히 어떤 이에게만 선하신 의지를 드러내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순전히 그 사람만의 생각이다. 예정에 없던 어떤 순간에 하나님이 간여하시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당사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지만, 반면에 그것으로 인해서 다른 누군가(or 무엇)는 반드시 피해를 입게 되어 있다.
나는 특별히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것을 계획하거나 실행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해봐야 망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위해서 그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신다. 그 특별한 일을 하는 순간 다른 특별한 존재가 피해를 입고 희생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는 피조물 전체가 다 소중하다. 인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다.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만 관찰해 보면 누구든지 알 수 있다.
세상은 세상의 질서대로 돌아간다. 그 질서는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진 질서이고, 그 질서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할 일은 특별히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 그대로 감사할 일 뿐이다. 만약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고 싶다면 그것에 걸맞는 노력을 하면 된다. 그리고 노력하는 것에 감사하면 그만이다. 우리의 노력 의지는 질서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자연의 질서에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습지길을 걸으면서 여전히 조심을 하지만, 지금은 자연의 순리에 그저 따를 뿐이다. 걸어서 행복하면 그 자체로 감사하고, 내 발에 밟혀 죽는 생물이 있다면 마음이 좀 불편하지만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나 또한 언제 무슨 일로 죽을 지 알 수 없고, 마찬가지로 내가 의도하지 않게 죽음이 찾아와도 나는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이러해도 좋고 저러해도 좋다. 세계는 하나님 안에서 언제나 하나였고 완전체였다. 내 의식이 그 완전체와 온전히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라면 목적이랄까...... 아직은 살아온 습관이 여전해서 온전하지 못한 것이 흠이긴 하다. 어쩌랴, 이것도 감사할 일인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