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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09일

『죽음공부 - 다석 사상으로 읽는 삶과 죽음의 철학』이 도착했다. 박영호가 그의 스승 류영모에 관한 책을 여남은 권 썼는데 그 가운데 한 권이다. 류영모는 함석헌의 스승이기도 하다. 최근 나는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에서 견성한 자, 깨달은 자, 하나님을 체험한 자들을 추적하며 그 기록을 찾았다. 류영모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분으로서 그가 하나님을 만나서 거듭나고 새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나의 과제는 이것이었다. 여러 종교에서 절대자를 만난 사람들의 체험이 어떠했는지, 그 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이 만난 그 절대자가 과연 동일한 절대자인지에 대한 것도 내 연구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의 추적으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그리고 내 확신은 더 명확해지고 있다. 하나님은 특정 시대, 특정 종교, 특정인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시대를 떠나서 늘 전 우주, 전 세계의 한 분 절대자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체험과 그 표현은 그 시대, 그 지역, 그 문화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나 진심으로 하나님 만나기를 원하며 자기(거짓된 나)를 내려놓으면 견성할 수 있었다. 내가 견성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내 속의 거주하는 본성, 즉 성령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자기 외부에서 찾을 수 없다. 인간은 현상학적으로 자기 내면 외에는 세계를 볼 수 있는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이미 철학과 과학에서 검증된 부분이니 참고해 보시라.

류영모는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그의 거듭남의 표현은 사뭇 토속적이고 불교적이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의 표현도 스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자신의 표현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언어란 기호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이고 그 체험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체험에 대한 표현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화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그것을 오늘날 자기가 배운 언어적 표현이 아니라고 이단이니 사이비니 비판하는 자가 있다면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하나님'과 '하느님'이라는 언어적 표현으로 편가르기 하는 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이 책 머리말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서 아래에 옮겨 본다.

“나, 곧 제나(ego)를 깡그리 부정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침노하는 길이다. 이 제나는 없음(無)이요 빔(空)인 영원 무한 속에 잠시 일어서 꺼지는, 생사의 거짓 존재다. 이 제나의 근원이요, 귀처(돌아갈 곳)인 하느님께 나를 돌려 드릴 때 존재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영원 무한의 없음(無)·빔(空)이 참나이다. 이것은 제나의 생사를 뛰어넘는 일이다. 그러니 삶도 삶이 아니요 죽음도 죽음이 아니다. 예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영원한 생명(얼나)을 얻고자 멸망의 생명(제나)을 버림이라."(요한복음 10:17, 박영호 의역) 이것은 또한 석가 붓다의 사성제(四聖諦)인 고집멸도(苦集滅道)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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