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천의 갈대밭. 춤추는 갈대에 빛 조각이 튕겨져 나왔다.)
해가 서녘 하늘로 사라지기 전의 갑천 풍경이다. 이곳은 카이스트 정문 맞은편이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한동안 명상을 하고 다시 일어나 돌다리를 건너려는 그 순간, 태양에 역광으로 비친 풍경에 압도되어 잔디밭에 꽂힌 허수아비인 양 그 자리에 서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사진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햇살에 무척 신비롭기까지 했다.
감동적인 풍경과 마주했을 때, 그 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세상에는 똑같은 순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길을 가다가도 그런 장면과 마주하면 그냥 우뚝 서서 지켜본다. 사진을 제아무리 찍어도 사진은 눈에 비친 그대로의 장명을 담을 수 없다. 설사 비슷하게 표현하더라도 실제와 이미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장면 속에 들어가야 한다.
요즘은 이런 장면과 만나면 자동적으로 명상 단계로 접어든다. 그냥 그 풍경 자체가 된다. 그 풍경이 내 의식에 나타나지 않으면 사라진 것이지만, 의식 안에 있는 이상 그 풍경은 나 자신이다. 풍경이 어떤 모습을 하든지 그것은 나의 표현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