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존재감.
월평공원 습지길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나무이다. 어제도 그곳을 지날 때 이 나무와 교감을 했다. 비가 와서 잎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점점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데 잿빛 하늘에 펼쳐진 가지들이 오히려 더 웅장하고 멋있어 보였다.
나무를 올려다 봤다. 내가 나무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나무가 의식 위에 그냥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보는 자는 없다. 단지 나무만 있다. 그러니 나무를 본다는 말은 맞지가 않다. 나무가 의식에 나타나는 순간 나무는 나 자신이다. 생각이 나무에 대해서 이렇쿵저러쿵 말을 하겠지만, 그것은 객이 넋두리 하는 것으로 치부해도 무방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나무는 의식에서 사라진다. 왼쪽에 나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생각으로만 존재한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사물은 없는 것이다. 나는 발을 떼지도 않고 고개 한번 돌림으로써 나무가 나타나게도 사라지게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근본없고 허무 위에 세워져 있다.
나무를 느끼려면 나무를 정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는 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이미지 일 뿐이다. 나무의 생명은 그 나무가 내 의식 위에 직접 앉을 때만 나타난다. 나무는 내가 되고, 나는 땅 속으로 뿌리를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