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천 벤치에 앉아서)
오늘은 멀리 나가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고, 게다가 찬바람을 맞아서 목감기가 왔었다. 주말이어서 어디 가도 사람들로 붐빌 것 같아 오전에 조용히 집에서 보냈다. 꿀에 계피 가루를 타서 마시고 있다. 감기에 아주 좋은 민간처방이다. 처음 감기 신호가 왔을 때 그렇게 마시면 감기가 금방 떨어져 나간다. 나는 감기 신호를 조금 늦게 감지해서인지 오늘 조금 더 심해져 있었다. 지금은 조금 나아진 듯하지만 밤을 지나면 어떨지 모르겠다.
늘 가던 유성천 벤치에 앉아서 한 시간 명상을 했다. 유성천 중에서 사진에 보이는 이 자리를 내가 가장 좋아한다. 앞이 탁 트여서 경관이 좋다. 다만 하천 건너편 건물이 조금 신경에 거슬렸는데 지금은 익숙해서 괜찮다. <중국 황후 전통 마사지>라고 간판이 걸려 있다 ~ㅎ. 일층에는 기사 식당인데 몇 년 전에 친구랑 몇 번 먹어 본 적이 있다. 저렴한 비용에 식사가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반대편에서 보면 이런 풍경이다. 가운데 큰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었다)
풍경을 깨어서 지켜본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물오리가 날아와서 물놀이를 하고, 바람에 나뭇잎과 풀이 춤을 춘다. 하지만 깨어서 지켜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단지 전체 의식 안에서 형형색색 움직이는 물질만 보인다. 사람도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물질이 움직일 뿐이다. 물오리도 오리가 아니라 그냥 조그만 물질이 놀고 있을 뿐이다. 단지 지켜보면 사물의 이름이 사라진다. 그러니 그냥 물질로만 의식된다. 풍경 속 개체적 존재는 풍경 안에서 전체가 된다. 전체가 한 덩어리로 변화를 이어가며 계속 움직인다. 그 변화가 의식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풍경의 변화를 나는 알아차린다. 사람이 지나가면 지나가는 대로, 바람이 불면 흩날리는 나뭇가지와 풀들을 알아차린다. 지켜보는 자가 가끔씩 느껴지지만 거의 대체로 지켜보는 자도 없다. 실제로는 그냥 의식만 느껴진다. 이 의식은 사물을 분별하는 의식이 아니라, 사물이 나타나는 의식이다. 지켜보는 자와 풍경을 드러나게 하는 자는 같다. 그러니 내가 나를 보는 격이다. 다만 변화를 감지하는, 즉 알아차리는 힘은 매번 느껴지고 있다. 그 힘이 알아차리는 자라고 할 수도 있고, 풍경을 드러내는 자라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존재감이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가끔 의식 안에 펼쳐지는 풍경 외에 다른 어떤 현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알아차림을 이어가도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생각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오감과 생각으로 나타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이외의 것을 찾는다면 아마도 허상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것을 움켜 잡으려고 한다. 道를 구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의식에 나타나는 세상 이외의 것은 지금까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신비한 현상이나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경험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다른 깨달은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내가 생각한 게 맞는 것 같다.
의식 안에 저 풍경이 나타난다. 풍경은 저절로 변화하며 움직인다. 의식은 그 변화를 알아차림 할 뿐이다. 가끔 '내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아(ego)의 생각이다. 그 생각마저 알아차리면 쉽게 무시가 된다. 알아차림에 나타나는 것 이외에 특별한 것은 없다. 단지 몸의 느낌은 여전히 자아의 느낌이 많이 묻어난다. 몸의 느낌도 대상화되어 알아차림 하지만 완벽한 타자로서 느끼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몸의 감촉도 거리감을 가진 것만은 확실하다. 내 몸마저 물오리나 나무처럼 타자로 완벽하게 보여진다면 대성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