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공원 습지길 갈대숲)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늘, 나는 백만불짜리 경험을 했다. 저 갈대숲 오른쪽 나무 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보온병에 담아 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나 홀로 시간을 보냈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에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구름이 내려앉아 산허리를 감싸고, 갈대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고요한 평지를 두드리며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가만히 서서 오랫동안 먼 산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눈 앞에 펼쳐진 세상 속에 존재하기 위해서이다. 세상은 내가 움직이는 대로 나타난다. 가만히 서 있으면 세상도 나와 보조를 맞춘다. 세상과 내가 분리된 것 같지만, 실은 눈 앞에 보이는 그대로 내 마음 자체이다. 그러니 내가 나를 감상하는 것이다.
갑자기 커피 생각이 났다. 가방을 열어서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빗소리 때문에 커피 맛이 더 향기로왔다. 비오는 들판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 기분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떨어지는 빗물이 커피와 하나가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더 감칠맛 났다. 비가 커피잔에 막 쏟아졌다. 그걸 그대로 마셨다. 마음은 흥분과 즐거움이 넘쳤고 온 천지가 나를 향해 웃는 것 같았다.
내가 언제 또 이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겠는가? 순간순간 숲은 반짝이고 내 눈도 빛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이 습지길은 나의 영혼의 고향이다. 사람없는 이 습지길 숲을 나는 혼자서 품에 안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