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천은 안개가 끼고 미세먼지도 유별나게 나쁜 하루였다. 습지길 들어갈 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한동안 멈추었다가 그곳을 빠져나올 때 또다시 비가 내렸다. 사방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너무 좋았다. 우산은 쓰지 않았다. 가랑비여서 그냥 감촉을 느끼며 맞았다. 본래 나는 비 맞는 걸 좋아한다.
사진에서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저 버들나무를 오랫동안 쳐다봤다. 때로는 그 뒤의 산 전체를 이쪽저쪽 둘러보기도 하고, 물오리들이 날아왔을 때에는 그들의 물놀이를 지켜봤다. 의식은 맑고 깨어있음 상태를 유지했다. 의식에는 자연 풍경과 물소리만 나타났다. 자의식을 갖지 않으면 '나'는 없었다. 그냥 드러나는 자연이 전부였다. 저 풍경이 나 자신이었다. 의식 안에는 저 풍경 밖에 없었다. '나'는 없었다.
의식에서 저 풍경이 보일 때,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릴 때 그것들을 보고 듣는 자에게로 계속해서 집중했다. 의외로 집중이 잘 되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보이고 들리는 게 전부였다. 분명히 의식 안에 풍경이 보이고 물소리가 들렸다. 그 현상은 의식 안에서 저절로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타나게 하는 자에게로 집중은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의식 밑바닥은 나도 모른다. 그곳은 절대세계이기 때문에 의식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다만 의식에 비쳐지는 세상을 통해서 그 배경에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계속 이런 시도를 해야 한다. 완전히 깨달아 질 때까지. 그 때와 장소는 나도 알지 못한다.
지금은 길을 걸을 때, 자연을 볼 때, 물소리를 들을 때, 새소리를 들을 때, 책을 읽을 때 등 하루 중 많은 시간 깨어있음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생각은 일어나긴 하지만 잘 빠지지 않고 금방 깨어난다. 보는 자를 보고, 듣는 자를 듣는 데에도 힘들지 않게 잘 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사실 오늘은 조금 답답한 마음도 없진 않았다. 습지길 안으로 들어서면 기본 세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낸다. 자연 속에 묻혀서 명상하는 게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깨어있음 상태에서 보는 자를 보고, 듣는 자를 들으려 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의 근원은 보이지 않고, 단지 보는 자에게로 계속 의식을 돌려야 하니 답답함이 느껴졌다. 본성이 드러나기 전에는 계속 이런 상태로 지내야 할 것이다. 답답함도 이겨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