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계룡산국립공원 수통골에 혼자 갔다. 토요일이어서 평일보다 사람들로 붐볐다. 조용히 숲길을 걷고 싶었다. 계곡에 앉아서 자연 속에 묻히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별로 좋지가 못했다. 지난 밤 몸이 조금 안 좋았던 때문인지 걷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계곡에는 지나가는 사람들로 마음을 잡을 수도 없었다. 명상까지는 하지 못하고 마음의 휴식 정도는 얻은 것 같다.
가을의 정취가 멋졌다. 낙엽이 형형색색 자리를 깔았고 발에 밟히는 감촉도 좋았다.
충남대학교 앞에서 102번 버스를 타면 15분 이내에 수통골 앞 정류장 종점에 도차한다. 그기서 수통골 입구까지 약 20분 걸으면 된다. 집으로 돌아올 때 수통골에서 집까지 먼 거리를 걸어서 왔다. 시간을 재어보니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자전거를 타고 몇 번 다녀갔지만 걸어서 오기는 처음이었다. 유성천 상류에서부터 자전거길을 따라서 쭉 걸어왔다. 상류에는 본래 자전거길이 없었는데 몇 년 사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서 자연을 즐기며 순례자가 되어 걸어왔다.
요즘은 길을 걸을 때 순례자가 된다. 예전에는 길을 걸을 때에 온간 생각이 밀려와서 생각 속에 길을 걷게 된다. 때로는 자연을 보면서 걷지만 의식은 온통 생각에 빠져 있었다. 요즘은 다르다. 예전처럼 생각이 날뛰지도 않지만, 생각이 나타나도 의식이 생각에 매몰되지 않는다. 손님 지나가듯이 지켜본다. 눈은 세상을 향해도 세상에 빠지지 않고, 귀가 세상을 들어도 그것에 빠지지 않는다. 마치 세계와 내가 분리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의식은 또렷하고 깨어있다. 아직은 늘 그런 상태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생각에 빠졌다가도 금방 깨어난다. 한번 깨어나면 그 상태가 오래 유지된다. 이것이 한두 달 전에 비해서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요즘의 의식은 나날이 깊어진다. 그 변화의 속도가 현저히 느껴진다. 그 때문인지 걷는 게 지겹지가 않다. 보이는 것 모두가 순간순간 생기를 갖고 나타난다. 생각 속에서 걸을 때에는 지겨움이 생긴다. 하지만 생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느끼며 걸으면 늘 신선한 날것 그대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