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시에 집을 나서서 습지길로 향했다. 오늘은 처음부터 갑천 반대편으로 건너가서 습지길 깊은 곳 내 영혼의 안식처인 저곳(위 사진)에 도착했다. 저곳은 내가 습지길을 찾을 때마다 꼭 건너서 되돌아 나오는 종점이다. 입구에서 보통 걸음으로 30~4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다. 저곳은 경치도 아름답고 물소리도 경쾌하고 가끔 물오리나 백로 그리고 회색 왜가리도 와서 놀다 간다.
평일이어서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았다. 나 혼자 물소리 듣고 경치를 보며 명상에 잠겼다. 하지만 오래 있지 못하고 되돌아 나와야 했다. 다시 입구로 향할 때에는 걸음걸음 의식이 깨어서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가끔 물오리 가족들이 보이면 잠시 서서 그들을 바라봤다. 생각을 죽이고 오직 깨어있음 그 자체로 존재했다.
습지길을 걷다보니 마치 내가 순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듯했다. 내 눈과 귀는 온통 하나님을 갈구했다. 마음에 허튼 잡음을 죽이고 오직 내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과 하나되어 걸었다. 순례자가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들은 오직 주님만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먼 길을 떠난다. 비록 그들은 상상으로 주님을 그리기는 하지만, 그 하나의 간절함이 하나님께로 이끄는 길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나는 하나님을 상상하지는 않는다. 내 눈과 귀와 느낌과 마음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상상은 필요치 않았다.
위 사진은 습지길 입구 벤치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다. 돌다리가 물에 잠겨있는 게 보인다. 어제 저 건너편에 도착해서 신발을 벋고 이쪽으로 건너오려 했는데 돌다리가 너무 미끄러워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되돌아 갔는데, 오늘은 처음부터 반대편으로 건너와서 걸어왔다.
습지길을 빠져 나와서 입구 뚝 위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오랫 동안 명상을 했다. 시원하게 펼쳐진 경치가 너무 좋았고, 날씨도 따뜻해서 이곳을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한참 명상 속에 있다보니 온 세상이 내 속에 있음이 명확히 느껴졌다. 저 멀리 국립묘지가 있는 산까지 시선이 가자 그곳까지 내 의식이 뻗쳐져 있음이 느껴졌다. 저기까지가 내 마음이구나 생각하니 잠시 울컥했다. 저 풍경 전체가 내 마음, 나 자신이었다. 바람이 솔솔 부니 머리 위에서 나뭇잎이 자꾸만 떨어졌다. 아~, 내 마음이 한잎한잎 떨어지고 있었다.
옆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마침 게맛살을 사와서 남은 게 있어서 그걸 옆 벤치 위에 놓았다. 내가 몇 걸음 물러서니 달려와서 게맛살을 물고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맛나게 먹는다. 몇 번을 그렇게 받아 먹고 계속 달라고 나를 쳐다봤다. ^^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길었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의식이 깨어 있어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신선했다. 때가 되면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길을 떠나보려 한다. 그런 길을 떠나면서 온갖 망상을 하면서 걷는다면 그건 순례길이 아니다. 오늘 나는 순례자의 마음이 어떠한지 제대로 배운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오후 3시 30분 되었다. 5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다리가 아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