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은 후 오랜만에 카이스트를 찾았다. 정문에서 가장 안쪽 내가 마지막으로 발도장을 찍는 지점에서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되돌아 나왔다. 시간 보내는 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저 벤치에 앉아서 나무와 구름과 건물을 보면서, 주변의 소음을 들으면서 명상을 했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구름이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 바람이 내 얼굴을 때리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세계에 관여하시나 살폈다.
며칠 사이에 의식이 더 명료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상 초보자들이 잘 감지하지 못하는 '그것'이 제대로 잡히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세상을 경험하는 재미가 제대로 느껴지고 있다. 길을 걸어도 그리 지겹지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답답하지가 않다. 그냥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평온하고 즐겁고 신선했다. 종종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지만 금방 의식하고서 생각을 떨쳐버렸다.
세상이 의식되면 그 내용이 기억과 생각으로 넘어간다. 생각은 늘 과거의 정보를 불러와서 재생하고 말을 건다. 그걸 의식은 모두 안다. 그 과정이 너무 확연히 보여서 재미있다. 생각이 내가 아니란 게 점점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신기하기도 하다. 이 단계까지 오는 데에도 나는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재미가 붙어서 속도를 더 낼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