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옥자쇄(妻獄子鎖)'라는 말이 있다. 가정에 갇혀서는 하느님(니르바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할 마음을 가지고 처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자위해 버린다. 그래서 예수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면서도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또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경이 없다"(마태복음 10:36~38)고 하였다. 가정을 초월하지 않고는 하느님(니르바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석가붓다는 출가하기 전에 낳은 외아들 이름을 라훌라(Rahula)라고 지었으니 장애물이란 뜻이다.
- 《다석사상으로 본 불교, 금강경》p.94, 박영호
예전에는 예수님이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한 말이, 단지 가족의 일부가 내가 기독교를 믿는 것에 반대하고 핍박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단순히 그런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보면 대체로 가정 전체가 기독교를 믿고 있다. 그 때문인지 특별히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핍박받는 일이 없다. 요즘은 부모 자식간에 종교가 달라도 인정해 주는 세대이다보니 종교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도 않는다. 예수님 시대에도 대체로 부모의 신앙은 자녀의 신앙으로 확대되어 이교를 믿지 않는 다음에야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저런 말씀을 하셨다. 요즘 내가 겪어보니 그 말의 진의가 확 와닿는다.
나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음에도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따갑다. 지금은 알고 지내던 기독교인 친구들과는 하나도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 지금은 오히려 그런 연락 단절이 좋다. 불필요하게 부딛혀서 대립하지 않아도 되고, 나는 조용히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더 뜨거워지기만 하면 된다.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10~20년 후에는 내가 옳았다는 것을 그들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노년에 이 길을 가는 건 참 힘들다. 나도 첫 발을 내디디고 3년이 지났다. 지금 내 나이에 이 길을 가는 게 그나마 가장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역사 속 깨달은 자들도 빠른 사람은 30대에, 늦은 사람은 50대를 넘기지 않았다. 석가, 예수는 30대에, 공자, 간디, 톨스토이, 류영모는 50대 초에 깨달았다. 오늘날 깨닫는 사람들은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들은 대체로 30대에서 50대 사이였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사실 내 가족은 내가 이 길을 가는 걸 모른다. 누나는 이해를 해 줄 것 같지만, 특히나 엄마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이 괜히 다툼만 만들 게 뻔하다. 엄마는 엄마의 신앙을 그대로 지키게 해 주면 된다. 엄마는 굳이 내 길을 따라가지 않아도 마음이 순수하고 열정적이어서 이 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 길을 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고요한 관계에 파탄이 생긴다. 엄마가 가슴에 지닌 신앙관과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맞지 않다는 표현보다는 내 길이 더 심층적인 길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엄마는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일 나는 줄 아는데, 엄마 세대의 신앙관을 바꾼다는 게 산을 허무는 것만큼 힘들다. 엄마 뿐만 아니라 그 세대 기독교인들은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한 예로, 오래 전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을 때, 병문안을 오신 권사님이 나를 보더니 '무용 선생은 왜 예수님을 믿지 않느냐?'로 따져 물었다. 얘기를 해보니 내가 교회 잘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듣고 그것을 신앙으로 결부시킨 것이다. 그분 뿐만 아니라 고향 교회에서 잘 알던 다른 권사님 몇 분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 장례식에 오신 권사님은 내가 대전에 살고 있는 걸 몰랐던지 왜 교회에 오래도록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분은 어릴 때의 내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교회에서 보이지 않으면 기독교를 떠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분히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기독교는 사람들을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 두기만 하지 진정한 구원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기독교 안에 있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은 다 적대시하거나, 처량하게 보거나, 무관심하게 본다. 하지만 그 울타리는 안락한 감옥과 다름 아니다. 구원이 그렇게 쉬웠더냐? 그렇게 쉬운 구원이라면 예수님이 좁은문을 말하지도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