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경험하는 세상을 현상계라고 말한다. 현상계란 실제의 세계가 아니라, 눈의 망막을 통한 정보가 전기적 신호를 거쳐서 뇌로 그 정보가 전달되어 마음에 환영으로 나타난 세계를 말한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은 가상의 세계란 의미이다.
위의 사진은 예전에 내가 자주 찾던 월평공원 습지길이다. 비가 온 후에 가끔 길에 물이 고여서 주변의 나무와 숲을 곱게 비추곤 했는데, 지나가다가 그 장면을 담은 사진이다.
물 수면에는 나무 기둥과 잎사귀가 풍성하게 드러나 있고, 그 사이로 하늘이 비치고 있다. 만약 저 물 웅덩이가 마음이라면 그 수면에 비치고 있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세상이다. 사진에서는 물 밖의 세상이 있어서 그것이 물에 반사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그 밖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현상계에 드러나는 세상 그것만이 전부이다.
플라톤은 동굴안에 비친 그림자가 실재의 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굴을 벗어나서 그 밖에 있는 실재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실제란 물 웅덩이를 비추고 있는 실재의 나무와 잎사귀와 하늘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우리가 보는 세계의 실재를 알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역이고 미지의 세계이다.
현상계에서는 오직 보이는 것만 그 순간 반딧불이의 불빛처럼 찰나적으로 존재하고, 가려지거나 숨겨진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소리나 맛이나 감각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드러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예를들어서, 손으로 어떤 물체를 덮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 가려진 물체는 존재할까? 거의 모든 사람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내가 친구에게 실험을 해 봤는데 모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존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존재를 본다고 착각한다. 그러니 잠시 가려지거나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침에 운동하며 걷다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서 참 깊이 있는 이해를 하게 되었다. 물론 이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오늘은 좀 생생하게 앎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