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떤 영혼 안에서는 홀로 사시고 다른 영혼 안에서는 홀로 사시지 않는다. 어떤 영혼 안에 머무는 것은 좋아하시고 다른 영혼 안에 머무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신다. 어떤 영혼 안에서는 자기 집처럼 모든 것을 명령하고 지배하고 살지만, 다른 영혼 안에서는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는 낯선 집에 있는 낯선 사람처럼 산다."
"하느님께서 초자연적인 은혜를 내리시면 합일이 이루어져서, 하느님과 그 영혼의 모든 것이 참여적 변화를 통해 하나가 된다. 그렇게되면 영혼은 영혼이기보다 하느님인 듯 보인다. 이는 실로 동참에 의한 하느님이다. 그러나 비록 변화는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전과 같은 하느님의 본질과는 아주 다른 것이니 아무리 태양빛을 받은 유리라도 그 광선과는 본질이 다름과 같다."
- 십자가의 성 요한
그(성 요한)는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의 영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다. 두 번째 글에서 하나님과 합일을 해서 마치 자신이 더 이상 영혼이 아니라 하느님인 것처럼 보인다고 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다르다고 말한다. 성 요한은 인간 영혼을 인정하는 스콜라 철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체험을 설명하고 있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된 존재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완전한 동격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랬다가는 이단으로 낙인 찍힐 테니까.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전에는 자아가 삶을 살아간다. 하나가 되기 전에는 생각하고 느끼고 이해하는 모든 것이 자아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래서 그 자아로 인해서 내 영혼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순간에는 자아가 사라진다. 그 순간만은 자아가 소멸해버려서 온전히 하나님만 자각된다. 자아가 사라져도 의식은 살아있기 때문에 자아없는 합일 상태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때의 인식은 전적으로 하나님 자체에 의한 의식이다. 그 합일 상태를 빠져나오면 다시 자아가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 전 자신이 합일 상태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니 마치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되돌아 온 듯한 착각이 들 수 있다. 실제로는 우리 안의 하나님이 자아가 소멸되자 그 자체로 드러나면서 자각된 것이다. 이것을 자아의 관점에서 볼 때 마치 자신의 영혼과 하나님이 합일된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