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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08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태복음 10장 35~37절)

예수님은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단순히 가족 구성원 중에서 종교가 달라서 신앙 생활을 방해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예를들면, 아내가 기독교를 믿는데 남편이 불교도이면 교회를 못 나가게 한다든지, 기독교를 믿지 못하게 한다든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막 10:28)'이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아내나 자식이나 전토(막 10:29)'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가족까지 떠나야 했던 이유는 마음에 집착거리를 모두 없애기 위해서였다. 가족이 있으면 부모와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고 늘 마음을 써야 한다. 즉 마음의 중심이 가족에게 있게 된다. 그런 경우 우선순위가 바뀌어서 하나님 나라를 얻지 못한다. 마음가는 곳에 보물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가족을 향한 모든 노력은 자아가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이 아닌 것이다. 당연히 예수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신앙 생활 또한 문제 없이 잘 하고 있다. 예수님 시대에는 결혼 생활에 뭐가 문제여서 모두 버리라고 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오늘날은 아무런 문제 없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을까?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가정사가 문제로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것 만큼 신앙 생활 하기 쉬운 것도 없다. 일은 일대로 하고, 가족은 가족 대로 돌보고, 교회 활동은 그것 대로 그냥 하면 된다. 근심걱정 없이 살면 된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분명하니까. 그래서 일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기독교인들 중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자신들은 모두 거듭났다고 말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니까. 신앙을 입으로 시인할 수 있으니까. 자기 마음을 들여다 봐도 분명하니까. 하지만 뭐가 달라졌는가? 자아는 그대로이고, 삶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의식도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종교적 열성이 더 깊어졌다는 것 외에 무엇이 다른가?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일까? 그들은 아직 하나님 나라를 못 보았다. 그러니 한결같이 착각을 하고 있다.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못 보고 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한다.

가족이 있으면 당연히 심리적으로 구속을 받는다. 아내와 자식들을 아끼지 않는 남편이 있겠는가?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그들은 보살펴야 한다는 게 가장의 생각이다. 즉 마음의 보물이 가족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절대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없다. 마음이 그것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자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최근에 그것을 실감했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이런 상태가 되니 마음이 비워져서 진리를 좇는데 모든 것을 쏟을 수 있었다. 단 하나라도 마음에 담긴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발목을 잡아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경험으로 실증되고 있다.

Copyright ⓒ 2000~Now 김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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