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전혜린이 떠올랐다. 왜 일까? 며칠 동안 유럽에 대한 생각을 좀 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 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며 다녀야겠다 생각했고, 4~5년 뒤 유럽으로 유학을 할까도 생각했다. 그럴려면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배워야 할 텐데 어떻게 시작하나 생각도 했고, 영국에서 공부하면 영어만 하면 되니까 수고를 덜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유럽에 가서 공부할 생각을 하나 그것도 궁금했다. 뭐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릴 때부터 유럽을 동경했던 것도 있고, 유럽에서 생활해 보고 싶은 욕망도 가슴 깊은 곳에 있다. 더 늙기 전에 마음껏 유럽을 헤집고 다녀보고 싶다.
(2001년 5월 28일, 뮌헨 대학교 앞 풍경. 내가 찍어서 내 모습은 없다 ^^)
유럽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전혜린이 생각났다. 그녀는 1955년 시월의 어느 가을날, 스물 한 살에 독일 뮌헨에 도착했다. 뮌헨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기 위해 떠난 것이다. 그녀의 글은 여러 책에 잘 남아 있다. 나는 20살 무렵부터 그녀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남자인 나로서도 그녀의 열정과 유럽에서의 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유럽에 대한 인상을 가장 처음으로 깨워준 사람이 전혜린이 아니었을까 싶다.
2001년도에 혼자서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에도 나는 전혜린의 흔적을 추적하기 위해서 특별히 뮌헨의 슈바빙을 찾았다. 그녀가 다녔던 뮌헨 대학교에도 들어가 보았고, 도서관의 통으로 만든 대형 나무문은 아직도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슬픔이 묻어 있는 영국공원에도 가 봤다. 그녀가 늘 거닐던 레오폴가가도 걸어봤다. 그녀의 글에서만 보던 곳을 직접 느끼고 접하니 어찌나 감동적이든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혼자 돌아다니다가 괴테 동상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어느 날 전혜린 글을 읽던 중 그녀가 괴테 동상 아래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놀랐다. 그렇게 오래 전혜린 사진을 봐왔지만 같은 장소인 줄 정말 몰랐다. 그녀의 사진이 흑백이어서 그랬을거다. 어찌나 반가운지 ...... ^^
(왼쪽은 내가 찍은 사진, 오른쪽은 전혜린이 찍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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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전혜린이 아니더라도 유럽에서 한번 생활해 보고 싶다. 전에는 한 달 유럽을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여러 달 유럽에서 머물며 지내보고 싶다. 여행하며 느낀 것인데, 급하게 이동하며 본 것은 기억에 남는 것도 없었다. 천천히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은 시간이 흘러도 몸이 그것을 기억했다. 예를들면 지나가는 길에 본 것들은 거의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로마의 오드리 햅번이 올랐던 <스페인 광장>의 계단, 파리의 <퐁네프 다리>와 세느 강, 프라하의 <카펠교> 등 오래 머물면서 시간을 보냈던 곳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즉 마음에서 뿐만 아니라 몸도 그곳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다음에 유럽에 가면 가능한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지내볼 생각이다.
그렇게 유럽을 여행한 후에 제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다. 가장 좋은 방법이 유학을 하는 것인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잡혀있지 않다. 요즘 한참 생각 중이다. 가능한 한 앞으로 10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