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둔산동 갤러리아 앞에서 버스를 타려고 가는 중이었다. 버스 정류장 옆에 한 무리의 선거운동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 전단지 같은 걸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일부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뭔가를 얘기하기도 했다. 그냥 봐서는 선거운동 하는건지 다른 무엇을 하는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지난 밤에 잠을 잘 못잔 나로서는 부딪히기 싫었다.
다행히 옆에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을 동안 나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날씨가 좀 쌀쌀했다. 얇은 셔츠를 입어서 감기 기운까지 왔다. 버스가 오려면 아직 6분이 더 있어야 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생각을 잠재우면 뇌가 에너지를 덜 사용하고 쉬기 때문에 몸에 피로가 풀린다. 우리가 잠을 잘 때 그래서 피로가 풀리는 것이다. 일이 분 정도 그렇게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아주머니들 소리가 들렸다. 내 옆 벤치에 20대 여학생이 앉아 있었는데 좀 전에 봤던 그 유니폼 입은 아주머니 두 사람이 그 여학생에게 뭔가를 묻는다. 설문조사도 아니고 손에 뭔가가 쓰여진 보드를 하나 들고 잠시 얘기하더니 나에게로 넘어 온다.
한 사람은 조금 젊어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었다. 두 사람이 내 앞에 서서 햇볕을 가렸다. 모자를 쓰고 눈을 감고 있던 터라 갑자기 캄캄해졌다.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이, 초라한 옷을 입고 길거리에 앉아 있는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났다. 알렉산더는 그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말했다. 그는 단지 이렇게 말했다. '왕이시여, 그대가 내리쬐는 태양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주시오!'라고. 나도 두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내 앞에 오자마자 그 모드를 들이밀며 아줌마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을 퍼부었다. 무방비 상태로 앉아 있는 내 앞에 거구의 아주머니 둘이 떡 막고 있으니 피하기는 이미 걸렀다.
젊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성경에서 '전쟁'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나는 그녀가 도대체 먼 소리를 하는지 잠시 들고 있는 보드를 쳐다보았다.
위에 질문이 있고 아래에 두 개의 보기 항목이 있는데, 맞다고 생각하는 공간에 작은 스티커를 붙이는 거였다.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작은 스티커를 주었다.
A항목은 '핵전쟁'이고, B항목은 '종교간의 교리전쟁'이라고 되어 있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거쳐갔는지 '종교간의 교리전쟁'에 수 십 개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핵전쟁'에는 몇 개만 붙어 있었다.
내가 말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전쟁이라 했는데, 성경 어디의 전쟁을 말하는거냐?', '이렇게 앞뒤 전후 사정 다 자르고 전쟁이 무슨 의미냐고 묻고 두 개의 보기만 달랑 보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전쟁하면 핵전쟁을 많이 생각하시거든요. 선생님은 어떤 전쟁을 생각하세요?"
여전히 대책이 없었다. '이 사람들 도대체 뭔 수작을 부리는거야'라고 생각되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몰랐다. 그들이 들고 있던 보드를 좀 더 찬찬히 살펴봤다. 아래에 조그만 글씨로 '000교회'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런데 '000'에는 스키커를 붙여서 교회 이름을 감추었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나는 말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전쟁은 아래 두 보기에는 없네요. 둘 다 아니면 어디에 붙여야 하나요?"
젊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무데나 붙이면 돼요. 가운데 빈 공간에 붙여도 되고......"
나는 두 보기 사이에 있는 빈 공간에 붙였다. 빈 공간에 붙인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뭔지는 잘 모르지만 '순진한 사람들이 이들의 꼬임에 다 넘어갔구나' 싶었다. ~ㅎ
젊은 아주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교회 다니세요?"
나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나? 지금은 교회를 출석하지 않으니 교회 다니지 않는게 맞다. 만약 '하나님을 믿으세요?'라고 물었다면 그렇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다니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존재하는 곳이다. 교회와 예배당을 구분 못하니, 예배당 출석 안 하면 마치 신앙을 모두 버린 줄 안다.
젊은 아주머니가 갑자기 손에 쥐고 있던 전단지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렇다면 이거 한 번 읽어 보세요!"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종이에 하얀 글씨로 '신천지'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들은 신천지였다. 오랫 동안 신천지가 전국을 강타하며 난리였지만 내가 직접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들은 내가 어떤 답을 하더라도 전도지를 주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전도지를 줘서 포교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선거 때가 되니 옷도 비슷하게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말도 안 되는 퀴즈를 들이밀며 전도를 하고 있었다. 세상 흐름을 이용해서 약은 수를 잘 쓰는 것 같았다. 신천지가 진정한 종교라면 이따위로 해서는 안 되는 게다. 사람을 진리로 이끈다면서 이런 조작을 훈련시키고 거리로 나서게 하는가? 한심한 작자들 같으니. 내가 신천지에 대해서 잘 아는 바는 없으나 이렇게 하는 짓을 보면 거짓된 자들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신천지는 대충 들어봐도 이단임을 분명히 알겠는데, 종교에 빠져서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비단 이들 뿐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