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모 선생은 하나님을 '없이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없는 듯 텅 비었지만 그 자체로 존재하시는 분이란 의미이다.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다. 그러니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다. 세상이 있기 전에는 하나님은 그야말로 공(空)이었고, 무(無)였다.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다. 매 순간 세상은 창조된다. 이 창조 세계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지각하고 인지한다.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는 이 세상은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 자신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인 이 세상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자각한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냄새맡고, 듣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한 작용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며 글 쓰는 이 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내가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 아무것도 없다. 내가 나라고 주장하는 것은 생각과 감정이 뜬구름 잡듯이 하는 망상에 불과하다. 그런 생각을 버리면 하나님의 존재가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 창 밖으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술을 한 잔 했는지 학생들이 노래를 부른다. 여자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방 안에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도 들린다. 이 모두가 하나님이 세상을 움직이는 소리이다. 내가 좋다 싫다 가리지 않으면 그 모두가 하나님의 세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