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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6일

 

오후 3시가 넘어서 박영호 선생의 책《다석사상으로 본 유교》를 들고 운동하로 나갔다. 오늘은 운동 하다가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날씨가 생각보다 더웠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아서 우산까지 준비했는데 비는 오지 않았다.  

유성천을 따라서 유림공원 방향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좁은 둑길 끝 벤치에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멀리서 다가가고 있었지만 희끈한 머리칼이 보여서 노부부인 줄 알았다. 아내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남편은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갈 때 곁눈질로 살짝 봤다. 남편이 아내의 손톱을 깍아주고 있었다. 너무 정성스럽게 손을 다듬고 있어서 순간 감동 받았다. 이 둑길 오른쪽 바로 옆에 요양병원이 하나 있다. 아마도 그기에서 아내가 요양을 하는 듯하다. 요양병원에 있다는 것은 중병에 걸렸다는 것인데 마음이 잠시 침묵했다.

유림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전망대에서 잠시 쉬면서 모자를 벗고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저 멀리 유성다리를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쉼을 얻었다. 가슴이 확 트였다. 갑천에는 물이 많이 차 올랐다. 풀들도 이전과 다르게 많이 자라났다. 물오리가 간혹 깩깩 소리를 지르며 날아갔다. 그 세계가 곧 내 세상이었다.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한참 읽고 있는데 갑자기 세상이 더 어두어졌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더 많이 몰려왔다. 소나기가 막 들이닥칠 기미였다. 책을 덥고 되돌아 나갔다. 유성 홈플러스는 유림공원 옆 도로 건너편에 있다. 커피를 마시며 야외 탁자에서 잠시 쉬고 가려고 걸어갔다. 어제 갔던 그 커피숍에 들렀다. 메뉴판을 보니 '카페 아메리카노'가 보였다. 다른 곳에서는 그냥 '아메리카노'라고 되어 있든데 뭐가 다른지 궁금했다. 약간 통통한 남자 직원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어제 봤던 마른 직원은 처음에 없다가 내가 대화하는 중에 나타났다. 내가 통통한 직원에게 물었다.  

"그냥 아메리카노와 카페 아메리카노가 뭐가 다른가요?"
"우리 가게에서는 카페 아메리카노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이게 정확한 명칭일 겁니다."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고분고분 했다.
"그러면 샷 추가하는 것과 큰 사이즈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샷 추가는 보통의 컵에 샷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고, 큰 사이즈는 샷과 물의 양을 두 배로 한 것입니다."
"그럼 샷 추가는 더 진하다는 말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큰 사이즈로 주세요." 

이렇게 해서 천 원 더 추가하고 큰 사이즈로 '카페 아메리카노'를 받았다. 시커먼 커피물이 넘칠 듯 출렁거렸다. 다 먹으려면 배가 빵빵해질 것 같았다. 속도 쓰릴텐데 은근 걱정도 되었다. 다음에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에는 보통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카페라떼 보통으로 주문했는데 먹다보니 좀 모라잤다. 

어제 앉았던 그 탁자에 앉았다. 계속 그 자리가 끌린다. 특별한 것도 없고, 위치도 그리 좋은 건 아닌데 말이다. 위 왼쪽 사진이 그 자리이다.

《다석사상으로 본 유교》를 펼쳐서 계속 읽었다. 얼마나 깊이 독서에 빠졌든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마도 4시 조금 넘어서부터 읽은 것 같은데 시간을 보니 6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날이 더 어두워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곧 가야지 생각했는데 머리 위에서 갑자기 전등이 켜졌다. 아싸~! 물만난 고기처럼 계속 앉았다. 커피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았다. 조금 진해서 속도 은근 쓰려왔다. 배 속에서 꼬로록 소리도 나는 걸 봐서는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일층 로데리아로 가서 불고기 버거를 샀다. 버거와 콜라만 주문했더니 세트로 하지 않겠는냐고 묻는다. 얼마 차이나느냐고 물으니 400원 차이란다. '그럼 세트로 주세요'하고 받아왔다. 버거를 먹으면서 계속 책을 읽었다. 사람들이 종종 내 앞을 지나갔지만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무신경하게 되었을까? 확실히 나이는 먹었나 보다.

갑자기 앞에서 애기 소리가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여인이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애기와 놀고 있었다. 그냥 보면 학생같은데 벌써 큰 애기가 있다. 결혼을 빨리 한 듯 했다. 애기랑 노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독서에 빠졌다.

이 책은 내가 정말 알고 싶어했던 사상을 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읽는 순간 계속 빠져들었다. 책의 내용이 많아서 아직 절반 밖에 읽지 못했다. 정말 나에게 너무 중요한 책이다. 류영모 선생과 그의 제자 박영호 선생은 앞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앞서 간 분들임에 틀림없다. 많은 부분 내 마음을 울린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시계를 보니 밤 8시 정각이다. 정리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외 탁자에 앉아서 거의 4시간 동안 꼼짝 않고 책만 읽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다. 가끔 옆 테이블에 손님이 앉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은 30분 이상 앉지 않았고 거의 텅 빈 테이블만 있었다. 덕분에 조용하게 독서할 수 있었다. 

Copyright ⓒ 2000~Now 김무용(Kim Moo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