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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6일

외출하고 이제 막 들어왔다. 세면실에서 머리를 감는데 갑자기 생각이 쏟아졌다.

"어디까지가 나인가?"

내 앞에 하나의 <사과>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그냥 '사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과>가 아니다. '사과'는 언어일 뿐 눈 앞의 그 <사과>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번에 사과의 모든 면을 보지 못한다. 아무리 봐도 한쪽 면 밖에 볼 수 없다. 한쪽 면도 굴곡이 있으면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과를 보고 있고 그 사과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때의 사과가 그 <사과>인가? 잠시 전의 사과인가, 아니면 내가 말하는 순간의 사과인가? 사과는 시간적으로 계속 흘러간다. 과거의 사과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의 사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의 사과라고도 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의 사과는 우리가 말하는 '사과'와 같지 않다. 우리가 '사과'라고 말할 때에 그 사과는 관념적인 사과를 넘어설 수 없다. 결국 사과는 있는 듯 하면서도 없다.

나와 사과는 다르지 않다. 어디까지가 나인가? 어제의 이 몸과 마음은 오늘의 그것들과 같지 않다. 내일의 그것들도 같지 않을 것이다. 몸과 마음도 계속 흘러가고 변한다. 몸의 경우 팔, 다리, 몸통, 머리 어디까지가 나인가? 전체가 나라고 한다면 팔이나 다리를 잘랐을 때 어떻게 되는가? 잘린 신체도 나인가? 썩어서 흙이 될텐데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장기가 손상되면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그 장기는 누구인가? 내 속에 나 아닌 것이 기생하게 되었으니 황당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어디까지가 나인가? 나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 몸도 남이다. 그러니 이 몸을 부리기가 그리 어려운 것이다.

Copyright ⓒ 2000~Now 김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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