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내 이름을 무척 좋아했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였지만, 내 이름은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셨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 모두 직접 지어주셨다. 우리 때에는 이름에 돌림자를 사용했는데, 큰집 사촌들은 '배'자를 돌림자로 사용했다. 우리 형제도 '배'자를 사용할 뻔 했는데 아버지가 '무성할 무(茂)'자를 돌림자로 사용했다. 나중에 '배'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자로 하셨다고 들었다.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내 이름 '무용(茂用)'으로 인해서 놀림을 좀 받았다. 춤추는 것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무용지물(無用之物)'에서 '무용'이 같은 음이어서 종종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놀림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내 이름 한자의 뜻이 좋았기 때문이다. '용(用)'자는 이름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보통은 '용 룡(龍)'자를 많이 사용하는데 나는 '쓰일 용(用)'을 사용했다. 그래서 내 이름의 의미는 '무성하게 쓰인다, 많이 쓰인다' 이런 뜻이 되었다.
아버지가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기도 하고 이름의 뜻도 좋아서 내 이름을 무척 좋아했다. 도장도 직접 파서 내 책 모든 첫장에 찍기도 했다. 내 이름과 나는 거의 동일체 수준이었다.
몇 년 전부터 내 이름에 애착이 사라졌다. 내 이름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나 스스로 내 이름을 부를 일은 거의 없다. 모두가 나를 부를 때 다른 사람과 구분하기 위해서 부른다. 이름은 단지 A와 B를 구분하기 위한 용도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이름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고 지금은 이름을 쓰든말든 별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름은 사물을 고착화시킨다. 정지되고 멈추고 형태를 갖고 구분되는 것에 이름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하고 소멸한다. 이름으로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그 이름과 그 이름이 가리키는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일 수 없다. 우리가 부르는 '야훼', '여호와', '하나님', 'God'. '아버지' 등은 실제의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한 그 말들이 가리키는 하나님은 실제의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언어로 가리킬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상대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 한계를 알고 사용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실제의 하나님을 동격으로 생각한다. 언어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몰라서 그럴 것이다. 하나님은 이름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존재하기만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