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조(僧肇)는 무지한 망나니의 칼날에 목이 잘리기 앞서 형리에게 말하여 자필묵을 얻어서 시 한수를 적었다.

四大元無主 (사대원무주)
五蘊本來空 (오온본래공)
以首臨白刀 (이수임백도)
猶如斬春風 (유여참춘풍) 

몸에는 본디 나가 없고
마음 또한 본래 공한 것이라
머리에 흰 칼날 스치니
마치 봄바람을 자르는 것과 같구나.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나에게 큰 걱정이 있는 까닭은 내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몸이 없는데 이르르면 나에게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 노자 『도덕경』제13장 中에서

그 동안 잔병을 많이 앓다보니 몸에 대해서 많이 민감했다. 지금은 작년까지보다는 더 여유가 있고 초연해져 있다. 요즘은 몸에 어떤 증상이 나타나면 우선 관조를 한다. 예전에는 당황에서 더 상황을 악화시켰는데 이 몸이 내가 아니란 것을 안 후부터는 어떤 증상이 발생하면 일단 지켜본다. 마치 눈 앞에 애완견 한 마리 지켜보듯 이 몸을 지켜보면 내 마음도 더 이상 놀라지 않고 빨리 안정을 취할 수 있다.

종국에는 이 몸을 완전히 초월해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는 아니다. 그런 단계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으면서 자아가 제대로 한 번 죽어야 한다. 그때는 몸에 대해서 완전히 초연해 질 수 있으리라.

우리가 살면서 불행한 것은 이 몸과도 많이 관련되어 있다. 아프거나 늙거나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해하고 침울해진다. 몸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몸은 아프지 않을 정도로 잘 관리해야 하지만 그 이상으로 너무 공을 들일 필요는 없다. 몸에 대한 집착은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노자는 말하였다. "윗선비는 참(얼)을 듣고는 부지런히 걸어가며 가운뎃선비는 참을 듣고는 있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랫선비는 참을 듣고 크게 웃는다." (…) 칸트는 상근기의 사람은 가르치지 않아도 제 스스로 알기 때문에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석가는 하근기의 사람에게는 스승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공자는 천성이 중근기 아래의 사람에게는 너무 높은 이치를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엣사람들도 사람의 근기에 차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 『노자와 다석』, 박영호, p. 323-324     

이런 걸 보면 진리나 지혜는 아무나에게 막 던져주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어차피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밖의 것을 말해준다해서 그 사람에게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약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똥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서 죽음이란 육체가 더 이상 생동하지 못하고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의식은 육체에 속한다. 하지만 의식은 현상계와 하나님을 연결하는 중개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식을 통해서 세상을 자각하고 교통한다. 의식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의식이 개체적 인간의 감각에 집중되어 있는 사람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의식이 성령에 의해서 자각되어 있다면 그는 깨어난 사람이다. 개체적 의식은 늘 몸과 생각이 주인이 되어 세상의 일부로써 살아가지만, 성령에 의한 의식은 몸의 움직임과 생각을 포함하여 상대적 세상 뒤에서 전체로써의 세상을 자각한다.

개체적으로 사는 사람은 육체의 정지가 곧 죽음이다. 죽음과 함께 의식은 정지되며 곧 사라진다. 때문에 인간은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인간이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 죽는 사람은 의식이 사라지기 때문에 죽는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처럼 죽을 때에도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다. 내가 직접 죽어보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 아버지 돌아가실 때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곁에서 여럿 봤다. 그때 체험을 돌아봐도 그것은 확실한 것 같다. 문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다. 죽어가는 동안에도 그는 개체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깨어난 사람은 육체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몸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그의 의식은 이미 성령으로 살고있기 때문에 육체가 죽으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죽음은 헌 옷 벗어버리듯 생각한다. 죽음은 마치 깊은 잠을 자는 것과 같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아무 의식도 없다. 태어날 때 깊은 잠에서 깬 듯 했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 같은 상태가 된다.  

"人生樂在相知心(인생락재상지심)"
"사람이 사는 즐거움은 서로 마음을 알어주는데 있다."

- 「明妃曲二首(명비곡이수)」中에서, 王安石(왕안석)

마음이 통하는 사람 한둘만 있어도 사는 게 참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노하지 말아야지! 사람들은 주변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화를 잘 낸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닌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고 했다. 텅 빔 속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야 홀로서기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