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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끝에서 마주하는 허무함

스페인 피니스테레(Finisterre)에 있는 등대. 일부 순례자들은 산티아고를 거쳐서 이곳까지 와서야 모든 순례길을 끝낸다. 그들은 이곳에서 여행할 때 짊어졌던 소지품 일부를 태우면서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유럽을 만나다》 마지막을 읽고 있다. 그녀는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며칠을 보낸 후 피니스테레(Finisterre)로 향했다. 나는 구글 지도를 보면서 그녀의 이동 경로를 확인했다. 산티아고에서 피니스테레까지 가는 데 이삼일 정도 걸리는 것 같다. 피니스테레에 도착한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생장에서 피니스테레까지 걸으리란 나의 목표를 완전히 이루었다. 그런데 이렇게 들뜬 분위기 속에서 지난 여정을 추억하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이 시간들을 붙잡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이 또한 미련인가. 마음이 허전해진다." 

나는 이 기분을 안다. 올해 산티아고 순례길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대부분의 저자도 여행 마지막에 이 기분을 남겼다. 모든 도달해야 할 지점이 있다. 설사 목적지 없이 떠났더라도 최종적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게 목적지가 된다. 여행의 끝에서는 늘 허전함이 찾아온다.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함으로 나타난다. 막상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후련하면서도 아쉽고 허전하다. 어디 여행 뿐이겠는가, 모든 일에 있어서 그러하다. 예전에 어느 젊고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가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허전하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그는 연주를 준비하고 공연을 할 때에는 행복했으리라. 하지만 그 모든 열정과 행복은 모두 끝이 있다. 결국 우리가 얻는 행복은 진행되는 동안 뿐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행복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마쳤을 때 머지않아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다시 행복을 찾기 위해서 혹은 다른 열정을 찾기 위해서 혹은 이전 여행에서 찾지 못한 또 다른 자아를 찾기 위해서 혹은 …… 자신만의 '그것'을 찾기 위해서.

그녀는 이 여행 말고도 여러 번 여행을 한 것으로 안다. 그러면서 그녀만의 의미를 하나하나 쌓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면 모두 과거의 흔적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 그 과거의 영광 조차 기억에 불과하며 생명력이 사라진다. 그런 상태에서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건 또 다른 여행을 기획하든가 아니면 계속해서 자신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 뿐이고, 그때의 경험을 사진이나 글로 남겨서 그 기억을 연장시키는 것 뿐이다. 때로는 사람들과 나누기도 하겠지만 그런 행위도 오래 가지 못한다. 여행의 끝에서 오는 허무함은 나도 겪어봤고 모든 사람이 겪는 문제이다.

요즘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매일 삶 속에서 테스트를 하고 있다. 갑천을 걸으면서 마음을 살핀다. 목적없는 삶, 아니 매 순간이 목적인 삶을 살려고 한다. 여행을 할 때 비록 목적지는 정할 수 있지만 마음은 여행할 때나 여행하지 않을 때나 늘 한결같아야 한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숨어있는 나를 찾으려는 게 아니라, 발이 닿는 모든 곳에서 나를 경험하는 여행이어야 하고, 눈 앞에 펼쳐진 세상 자체가 나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것이 낯선 땅에서만 그러해서는 안 되고, 매일 마주치는 익숙한 환경에서도 그런 경험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 차별이 없을 때만이 여행의 끝에서 허무함과 마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상태에서는 여행의 끝이 없기 때문이다. 매순간이 여행이고 삶이다. 산티아고 끝에 있든지 내 방 안에 있든지 삶이 지속되는 한 늘 여행 중이다. 다만 몸이 이동하면 새로운 환경을 경험할 뿐이다. 나는 그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그래서 매순간 안에서 삶을 사는 훈련을 하고 있다. 지금은 마음공부를 해서인지 점점 더 쉬워지고 저절로 되어가고 있다. 아무도 이런 경지에서 여행한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한번 도달해 볼 것이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에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산티아고는 내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내 여행의 시작과 종착지는 한걸음 한걸음에 있다. 한쪽 발이 땅에 닿으면 목적지이고, 한쪽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여행 중이다. 산티아고는 단지 여행하는 중에 마주치는 하나의 의미있는 장소일 뿐이다."